회(會)의 발자취와 첫 모임의 기록. 창립의 인연과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영가회 회원들께 — 영가회 디지털 아카이브의 첫 자리를 짓는 한 호흡. 회의 사진·회보·회의록·회원 명부·회칙·문화상 자료를 한 자리에 모으는 모습.
영가회의 다음 50년을 향한 비전. 회원의 결·자제분의 결·디지털 아카이브의 결·안동을 한 호흡으로 짚는 자리.
종이로 묶어 두고 싶었던 글들을, 이제는 화면으로도 함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가회는 창립 50년을 맞아 준비하던 종이 50년사를 60년사로 미루고, 대신 디지털 아카이브를 짓기로 했습니다. 2026년 제작 계약이 체결됐고, 지금 보고 계신 이 아카이브가 그 결과물입니다.
2003년 1월 15일 소피텔앰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3대 금창태 회장 취임식(85명 참석) 자리에서 — "회는 모이는 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회가 무엇을 기억해 둘 것인지를 결정해 두어야 다음 세대가 회를 이어 갈 수 있다" 는 결로 제정된 영가문화상. 2004년 제1회부터 2014년 제11회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 결.
1977년 창립부터 지금까지 — 영가회가 〈우리는 왜 모이는가?〉 라는 물음에 답해 온 45년. 향우회를 넘어 안동의 문화·정신·역사·인물을 함께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자리로 옮겨 온 결의 자취. 모임의 친목·회보·문화상·40년사·안동 답방·박약회 후원이 한 자기 답으로 자리한 풍경.
1998년 7월 10일 — 창립 20주년을 맞아 회원들이 다시 펜을 든 영가문화 제2집 《그단새 스무해》. 제1집(1982년 《그단새 다섯 해》) 발간 16년 후. 1대 김해길 회장의 21년 결을 마무리하고 2대 류목기 회장 체제로 옮겨가는 자리에 있었던 문집.
1982년 3월 25일 — 영가회 창립 5주년을 맞아 회원들의 글을 한 권으로 묶어 처음 발간된 영가문화 제1집 《그단새 다섯 해》. '그단새'는 '그동안'의 안동 사투리. 김해길 1대 회장의 발간사로 영가회가 〈친목 모임을 넘어 기록하는 모임〉 임을 처음 선언한 자리.
1976년 12월 10일 3차 준비 모임에서 6가지 이름 후보(영장·영조회·정인친우회·안동친우회·영가향우회·상록회) 중 〈영가회〉가 만장으로 결정된 결로부터, 창립 시 〈永嘉常綠會〉을 거쳐 후일 〈永嘉會〉로 개칭된 결까지 — 영가회 이름을 한 호흡으로 정리한 자리.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에서 류혁인 회원이 회칙을 설명하고 원안대로 통과된 결로부터 — 1983년 1차, 1998년 2차, 2009년 3차, 2011년 4차·5차 개정까지 — 34년 다섯 차례을 거치며 다듬어진 영가회 회칙을 정리한 자리.
2026년 영가청년이 출범했습니다. 회의 표어에 오래 자리해 온 '후진양성'을 실제 모임으로 옮긴 것으로, 창립 반세기를 앞두고 다음 세대에 회를 잇기 위한 걸음입니다.
2026년 1월 7일 제49차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1977년 창립 이래 마흔아홉 번째 총회로, 이듬해 창립 50주년을 앞둔 자리였습니다.
2025년 영가회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7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설립 허가를 받고 8월 21일 법인 등기를 마쳤습니다. 법적 공신력과 투명한 회계를 갖추고 공익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2025년 7월 1일 회칙 개정으로 원로대표회의가 원로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제13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원로회원의 뜻을 운영에 반영하는 기구로, 의장은 원로회원 중에서 선출합니다.
2025년 6월 18일 제1회 영가포럼이 열렸습니다. 친목도모·상부상조·후진양성·고향발전을 내걸고, 회원의 친목 모임을 넘어 안동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자리로 나아간 시작이었습니다.
2024년 임시총회에서 영가회는 회칙을 폭넓게 손봤습니다. 고문 제도와 원로대표회의 조항을 새로 두고, 고향발전 특별기구의 근거를 마련했으며, 사무처 책임자를 사무총장으로 격상했습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멈춘 시기, 영가회는 《영가회보》를 다시 펴내기로 했습니다. 연 4회 타블로이드판 8면으로 회원 동정과 고향 소식을 나르며, 이후 이 아카이브에 실린 기록 대부분이 이 회보에서 나왔습니다.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편찬한 《영가회 40년사》 — 2018년 12월 20일 발행, 발행인 김계동, 사십년사편찬위원회.
2011년부터 2018년까지 — 류종묵 5대, 김봉구 6대, 김계동 7대 회장기의 자리들. 안동의 날 참가, 해외·국내 문화탐방, 회장 교체의 기록.
1998년 10월 24일 세명대학교 대강당 임시총회에서 류목기 2대 회장이 선출되고 회칙이 대폭 개정됐다. 초대 회장 22년 뒤의 첫 교체.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회지에 실렸던 수필과 논설을 골라 엮은 영가문화 제2집 《그 단새 스무해가》 — 1998년 7월 10일 발행.
1977년 3월 25일 인사동 남강(南崗) 다실에 모인 일곱 분의 결 — 그리고 다음 날 3월 26일 18:00 종로구 견지동 덕수빌딩 지하1층 연회장에서 열린 영가상록회 창립총회(61명 참석). 영가회의 가장 첫 자리의 두 호흡을 한 글에 정리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