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會)의 발자취와 첫 모임의 기록. 창립의 인연과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종이 회보에 담아 온 글과 사진을 화면으로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이 아카이브를 마련했습니다.
영가회는 창립 50년을 맞아 준비하던 종이 50년사를 60년사로 미루고, 대신 디지털 아카이브를 짓기로 했습니다. 2026년 제작 계약이 체결됐고, 지금 보고 계신 이 아카이브가 그 결과물입니다.
2027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영가회가 이어가려는 일들을 정리했습니다. 다음 세대 회원 영입, 안동 답방, 디지털 아카이브, 인성교육 후원, 영가문화상입니다.
영가회 디지털 아카이브를 열었습니다. 창립부터 오늘까지의 기록을 장별로 모았고, 회원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사진과 글을 함께 받고 있습니다.
2026년 영가청년이 출범했습니다. 회의 표어에 오래 자리해 온 '후진양성'을 실제 모임으로 옮긴 것으로, 창립 반세기를 앞두고 다음 세대에 회를 잇기 위한 걸음입니다.
2026년 1월 7일 제49차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1977년 창립 이래 마흔아홉 번째 총회로, 이듬해 창립 50주년을 앞둔 자리였습니다.
2025년 영가회는 사단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7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설립 허가를 받고 8월 21일 법인 등기를 마쳤습니다. 법적 공신력과 투명한 회계를 갖추고 공익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2025년 7월 1일 회칙 개정으로 원로대표회의가 원로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제13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원로회원의 뜻을 운영에 반영하는 기구로, 의장은 원로회원 중에서 선출합니다.
2025년 6월 18일 제1회 영가포럼이 열렸습니다. 친목도모·상부상조·후진양성·고향발전을 내걸고, 회원의 친목 모임을 넘어 안동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자리로 나아간 시작이었습니다.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9대 회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멈춘 시기, 영가회는 《영가회보》를 다시 펴내기로 했습니다. 연 4회 타블로이드판 8면으로 회원 동정과 고향 소식을 나르며, 이후 이 아카이브에 실린 기록 대부분이 이 회보에서 나왔습니다.
2021년 문상부 회장이 취임했습니다. 이 회장기에 《영가회보》가 부활했고, 회칙 전면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편찬한 《영가회 40년사》 — 2018년 12월 20일 발행, 발행인 김계동, 사십년사편찬위원회.
창립 초기부터 회를 지켜본 회원이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 회장기에 《영가회 40년사》가 편찬됐습니다.
2014년 12월 9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임돼, 이듬해 1월 9일 프레지던트호텔 신년하례회에서 취임했습니다.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취임했습니다. 이희범·권오을 등이 축하에 함께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 류종묵 5대, 김봉구 6대, 김계동 7대 회장기의 자리들. 안동의 날 참가, 해외·국내 문화탐방, 회장 교체의 기록.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신년하례회를 겸해 취임했습니다. 이 회장기에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와 첫 해외문화유적탐방이 있었습니다.
영가문화상은 3대 금창태 회장기에 제정됐습니다. 제정 취지문은 2005년 11월 15일자이고, 제1회 시상은 2006년 1월 9일 신년하례회에서 안동문화지킴이에게 했습니다. 이후 두 해마다 시상해 2016년까지 여섯 차례 이어졌습니다.
2003년 1월 15일 저녁 6시 30분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 2층 서궁에서 정기총회·신년하례회를 겸해 취임했습니다. 회원 85명이 참석했습니다.
1998년 10월 24일 세명대학교 대강당 임시총회에서 류목기 2대 회장이 선출되고 회칙이 대폭 개정됐다. 초대 회장 22년 뒤의 첫 교체.
창립 20주년을 맞아 회지에 실렸던 수필과 논설을 골라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 제1집이 학술 논고 중심이었다면, 제2집은 회원들이 고향을 두고 쓴 글과 수필·시가 주를 이뤘습니다.
창립 5주년을 맞아 회원들의 글을 한 권으로 묶은 첫 문집입니다. 표지 글자로 계미자를 쓰고, 책 앞에 안동의 옛 이름 〈영가(永嘉)〉의 뜻을 풀어 실었습니다. 발행 당시 회원은 117명이었습니다.
1977년 3월 26일 저녁 종로구 견지동 덕수빌딩 지하 1층 연회장에서 61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1976년 가을부터 네 차례 준비 모임을 거친 끝이었고, 처음 이름은 영가상록회였습니다.
영가회는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에서 회칙을 제정했습니다. 류혁인 회원이 회칙안을 설명해 원안대로 통과됐으며, 이후 1983년부터 2011년까지 다섯 차례 개정을 거쳤습니다.
김해길 초대 회장은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에서 선출돼 취임했습니다. 사무실은 덕수빌딩을 무료로 쓰고 회비 없이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꾸리던 시기였고, 1998년 10월까지 22년을 이끌었습니다.
영가회는 1977년 고향 사람끼리의 친목 모임으로 출발했지만, 문집과 문화상, 40년사 편찬을 거치며 안동의 문화와 정신을 기록하고 잇는 모임으로 자리를 넓혔습니다.
준비모임(1976. 12. 10) = 〈영가상록회〉 창립총회(1977. 3. )= <영가상록회〉 이후 〈영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