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경제인 〈6·끝〉 근대 기업인 이정석 — 봉화·청송·안동에서 양조업·건축업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신화

영가 사람들 ·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2023年 04月 15日글 · 정윤호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6호(2023년 4월 15일 발행) 7면 〈영가 사람들 — 안동의 경제인〉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필자를 '편집실'로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정윤호로 바로잡았습니다.

안동 출신 경제인·기업가 중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챙기던 안동 선비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기업의 ESG를 앞서 실천해온 경제인·기업가들, 그들의 역정과 활동상을 찾아본다.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동경유학을 마치고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포호빙하(暴虎馮河)의 기세로 실업계에 진출한 것이 약관을 넘어선지 불과 수년… 혹은 상점을 경영하고 때로는 광산에서 활약하야 횡행활보(橫行闊步)하니, 춘양일대는 그의 수완을 시련하기에 너무나 적당한 무대였으리라." (1937.9.22. 조선일보)

이정석이 사업을 시작한 곳은 봉화 춘양이었고, 사업을 일으킨 곳은 안동이었다. 조선일보는 그를 안동의 기업인으로 소개했다.

일제 강점기, 춘양은 금광으로 유명했다. 도래기재 너머 금정광산에서 생산되는 금은 연간 200kg을 넘었다. 금광개발이 본격화한 1930년대, 금정광산의 직원은 3000명에 달했고, 광산 앞 금정마을에는 1만여 명이 모여 살았다. 춘양은 또한 춘양목(금강송)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백두대간의 금강송은 모두 춘양을 통해 팔려나갔다. 영동선 철도는 춘양역에서 오메가 형태로 구부러진다. 춘양목을 실어내기 위한 철도 부설이었다. '억지춘양'이란 말이 춘양역에서 나왔다. 전국의 광부와 벌목공들이 춘양으로 몰려들었다.

이정석은 돈이 넘쳐나던 춘양에서 양조업을 시작했다.

"소화 4년에 춘양주조조합을 인수하야 동년 8월에 춘양주조 주식회사로 조직을 변경하면서 전무취체역이 되어…" (1937.9.22. 조선일보)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춘양주조는 1935년 자본금 8만원(요즘 가치 16억원) 규모의 춘양양조 주식회사(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363)로 성장했다. 이듬해 청송에도 자본금 5만원의 화목양조(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35-4)를 설립했다.

양조사업으로 목돈을 거머쥔 그는, 1937년 환일제재소(안동군 안동읍 서부동 188-1)와 환일상회(안동군 안동읍 서부동 188)를 동시에 설립했다. 둘 다 자본금 10만원의 대규모 회사였다. 환일제재소는 목재를 비롯한 각종 건축 재료를 생산했다. 환일상회는 환일제재소에서 생산된 건축 재료와 함께 소금과 곡류·비료를 팔았다. 금융업과 토지매매 및 무역업도 병행했다. 제재소는 공장, 상회는 종합상사였다. 환일상회의 거래선은 경성과 부산·대구로 확장됐고, 춘양목 목재는 일본으로 팔려나갔다. 30대 중반에 그는 이미 4개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의 경영전략은 계획과 실행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처음으로 종자돈을 모은 곳은 금광개발로 돈과 사람이 모여든 춘양이었다. 양조장을 하면서 그는 춘양목의 가공과 유통경로를 파악했다. 그 다음 행보는 청송이었다. 청송 역시 양질의 소나무 산지였다. 청송양조를 설립해 벌목공들에게 막걸리를 팔면서 청송 소나무의 유통경로를 익혔다.

사업적 기반이 확보된 이후, 그는 비로소 안동에 환일제재소와 환일상회를 만들었다. 춘양과 청송 양조는 술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이자 동시에 춘양목과 청송 소나무를 집하하는 거점이었다. 춘양과 청송에서 안동으로 출하된 목재는 환일제재소에서 가공돼 경성과 부산·대구, 일본 등지로 판매됐다. 4개 회사의 이윤은 모두 종합상사인 환일상회로 모였다. 이정석은 '돈은 사람을 따라 돈다'는 경제의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 정윤호 / 前 안동MBC 보도국장

재발행때부터 인기리에 연재해온 〈안동의 경제인〉은 사료의 부족에 따른 인물 선정이 어려워 6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다음호부터는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이 안동 근세 역사속의 또 다른 신선한 아이템으로 회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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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6호 (2023년 봄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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