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호(2022년 1월 15일 발행) 4면 〈영가 사람들 — 안동의 경제인〉 첫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안동 출신으로서 개인의 영달과 나아가 국가와 고향 안동의 경제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는 경제인·기업가들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챙기던 안동 선비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기업의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를 앞서 실천해온 경제인·기업가들, 그들의 역정과 활동상을 찾아본다.
국담(菊潭) 권태연(權台淵)(1881~1947)의 본관은 안동이다. 안동시 율세동에서 태어나 구한말 중추원 의관, 궁내부 검구관, 법부 참서관을 역임했다.
국담은 수백 년간 가양주로 명맥을 유지해오던 안동권의 증류식 소주를 일제 강점기에 양산체제를 갖췄다. 당시 국담은 1915년에 안동시 남문동에 '안동주조회사'를 설립, 〈제비원 소주〉라는 상표로 안동소주를 생산하여 서울·만주·일본 등지로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성가를 높였다.
안동의 대표적 명산물로 자리잡았던 안동소주는 국담 사후인 1962년부터 순곡소주 제조가 금지되자 희석식 소주가 만들어져 1971년까지 생산되다가 그 회사가 1975년에 (주)금복주에 합병됨으로써 안동소주의 명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이같은 제조방식은 1987년 무형문화재로 안동소주로 대량 상품화되면서 재탄생하게 된다. 국담은 또 1913년 '안동마포조합'을 설립했다. 마포조합은 안동포 중개 및 기술개량조합이었다. 안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안동포를 집산하면서 마포(삼베)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판매를 조직화하여 안동의 특산물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했다.
구한말 안동 지역의 최대 부호였던 국담은 안동 사람들에게 최대의 홍수로 기억되는 1934년의 일명 '갑술년 수해' 때에는 쌀 500가마니를 쾌척하였다고 하니 재력도 짐작되거니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한 사회사업가였다. 국담은 교육사업에도 앞장섰다. 당시 안동에는 신학문을 배우는 교육기관이 없었다.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학교 설립인가를 받는데 앞장섰고, 안동공립 농림학교(안동농림고등학교, 1933년 설립)와 안동공립 고등여학교(안동여자고등학교, 1942년 설립)의 설립을 위하여 거액의 돈과 대지 등을 희사하였다. 국담은 지역 특성에 걸맞는 창업과 경영수완으로 안동의 경제를 선도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기업가 정신을 가졌던 안동의 대표적 기업인이자 사회사업가였다.
— 이동시 / 안동상공회의소장
출처: 《영가회보》 8-1호 (2022년 겨울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