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경제인 〈3〉 근대 기업인 김중학 — 농산물 및 종합유통회사 설립, 교육사업에도 앞장

영가 사람들 ·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2022年 07月 15日글 · 정윤호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3호(2022년 7월 15일 발행) 7면 〈영가 사람들 — 안동의 경제인〉 세 번째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인물을 '김흥학(金興學)'으로 잘못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김중학(金中學)으로, 필자를 정윤호로 바로잡았습니다. 알림 끝의 편집진 전화번호는 싣지 않았습니다.

안동 출신 경제인·기업가 중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챙기던 안동 선비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기업의 ESG를 앞서 실천해온 경제인·기업가들, 그들의 역정과 활동상을 찾아본다.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1931년 산업철도로 개설된 경북선(김천-안동)은 안동지역에도 근대적 기업의 창업을 촉진했다. 철도와 육로의 확장은 시장의 확장을 의미했다. 근대적 기업들은 대량생산과 물류를 통한 새로운 공상(工商)의 방식을 깨우쳤다. 경북선 안동역이 영업을 시작한 이듬해 3월 법상동 126번지에 자본금 5000원(요즘 가치 1억원) 규모의 '안동입(安東叺) 합자회사'라는 다소 생경한 회사가 등장했다. 창업자는 서른 살의 김중학. 각 농가에서 짜던 가마니를 기계로 대량 생산해 전국에 팔았다. 김중학은 그해 연말 자본금 1만원 규모의 안동운수주식회사도 설립했다. 경북선 철도에 기반한 농산물 포장과 유통사업은 청년 김중학이 주목한 최고의 블루오션이었다.

가마니 제조회사와 운수회사는 그로부터 2년 뒤인 1934년 안동물산 주식회사(안동읍 법상동 279-2)라는 자본금 6만원 규모의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했다. 새끼와 가마니 등의 포장재 생산과 창고업, 운송업 및 운송 취급업, 금융업, 곡물 매매 중개 및 제분과 제유 등을 취급하는 종합 유통회사였다.

김중학은 안동물산의 사세를 확장하면서 1938년에는 풍산지역에도 자본금 3만원을 들여 풍산흥업(豊山興業(株))(안동군 풍산면 안교동 506-1)도 창립했다. 안동의 곡창지대를 겨냥한 공격적인 포석이었다. 안동과 풍산지역의 농산물 유통시장을 장악한 안동물산은 이후 지배인을 둘 정도로 규모가 확장됐으며, 일제말엽인 1943년에는 일본 자본가들도 대거 경영에 참여할 만큼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농산물 유통으로 대성공을 거둔 김중학은 30대 중반에 이미 안동산업계를 대표하는 리더로 부상해 있었다. 그는 사업 못지않게 지역 교육 사업에도 발벗고 나섰다. 1934년 4월에는 보통학교에 가지 못하는 여자 아이들을 위해 성세 야학원(초등 야간과정)을 개설했다. 2년 과정의 이 야학원은 초등과정의 학령아동은 물론 나이 든 부녀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이어서 중등과정의 민간 교육기관 설립도 추진했다.

'안동의 유지 김중학씨(32세)는...(중략)무산아동 교육기관을 위하야 많은 물질과 노력을 희생하야 왔으며 초등교육을 겨우 마치고 배움의 길로 더 나가지 못하고 시들어져 가는 자제들을 위하야 1만원이라는 거대한 재산을 던져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을 넣어줄 실업학원을 설립하고저' (1934.11.6. 조선일보)

중등과정을 대체할 실업학원은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결국 설립되지 못했다. 아마도 갑술년 대수해(1934년 여름, 안동읍 전역 침수)의 여파로 설립자금이 부족했거나 교육당국의 인가에 제동이 걸렸을 터였다. 하지만 교육기관 설립을 위해 요즘 가치로 2억원의 거금을 내놓으려 했던 그의 생각은 지금의 관점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산물 포장과 유통으로 거부가 되고, 그 돈으로 지역의 교육을 일으키려 했던 청년실업가 김중학. 100년전에 그는 이미 '부의 선순환'이라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있었다.

— 정윤호 / 前 안동MBC 보도국장

알림

일제강점기, 안동지역 경제계를 이끌면서 부의 환원을 통해 지역교육기관 설립 등의 사회사업에 헌신한 분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자주 등장하는 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권태연(權泰淵), 김하진(金厦鎭), 김두현(金斗顯), 유동저(柳東著), 정현모(鄭顯模), 윤좌형(尹佐衡), 권중렬(權重烈), 서병로(徐丙老), 이재유(李在瑜), 김중학(金中學), 이원집(李源楫), 김응한(金膺漢), 김시윤(金時潤), 이정석(李貞錫), 변우영, 손대일

안동의 기업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이 분들의 발자취는 매우 중요한 사료입니다만, 당시의 신문에 실린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분들의 내력을 아시는 분은 영가회보 편집진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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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3호 (2022년 여름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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