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경제인 〈2〉 윤좌형, 윤세형 형제 — 불우이웃 돕기·교육사업에도 앞장

영가 사람들 · 정윤호 전 안동MBC 보도국장

2022年 04月 15日글 · 정윤호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2호(2022년 4월 15일 발행) 10면 〈영가 사람들 — 안동의 경제인〉 두 번째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글은 앞서 주인공 이름이 '운치림·윤서환 형제'로, 필자가 편집실로 잘못 실려 있던 것을 원문대로 바로잡았습니다.

안동 출신 경제인·기업가 중에서도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챙기던 안동 선비정신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기업의 ESG를 앞서 실천해온 경제인·기업가들, 그들의 역정과 활동상을 찾아본다.

양조·곡물 회사 설립 이어 안동최초 백화점 경영에도 참여

정윤호 전 안동MBC 보도국장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안동 근대 기업의 효시 권태연(2022년 겨울호에 게재)이 주식회사 안동주조로 대성공을 거두자, 안동주조의 경영방식을 답습한 주식회사 경안양조(慶安釀造)가 출범했다. 1928년 5월 26일 안동군 안동면 동부동 37-3에 자본금 5만원으로 설립한 경안양조의 최대 주주는 자수성가한 윤좌형(尹佐衡, 1890년 생)·윤세형 형제였다. 윤좌형은 21살 때인 1910년부터 잡화상과 금은세공업, 고물상 등을 경영하며 종자돈을 모았다. 1914년부터는 곡물상, 1917년부터 해산물 거래 및 위탁 판매업을 경영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업을 일으킨 윤좌형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동생 세형을 일본으로 유학시켰다. 1928년 세형이 일본 고베상고를 졸업하고 귀국하자, 형제는 탁주 제조업체인 경안양조를 창립했다.

경안양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30년대, 인구 15만명이던 안동 군민의 70%가 경안양조에서 생산된 탁주를 마셨다. 원료로 들어가는 멥쌀과 찹쌀, 보리쌀은 연간 6000섬(80kg들이 1만2000가마)에 달했다.

경안양조 경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윤좌형과 세형 형제는, 1930년 권태연이 창업한 누룩 제조업체, 안동국자(安東麴子) 주식회사(1930년 2월 2일 설립, 안동면 동부동 246, 자본금 8만원)에도 주주로 참여했다. 안동국자는 경북북부 전역의 양조공장에 누룩을 공급하면서 연간 50만원(요즘 가치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어 자본금 20만원 규모의 곡물회사인 안동식산(安東殖産) 주식회사를 1938년에 창립하고, 부동산매매업과 과수원 경영회사인 안동대창 주식회사(1940년)와 안동 최초의 백화점인 동신상회에도 주주로 참여했다. 1930년대 들어서는 대규모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거나 창업하면서 안동 굴지의 대부호로 자리 잡았다.

이들 형제는, 안동농림학교 위치변경이나 안동유치원 유치, 경북선 철도 촉성 유치운동 등 일제강점기 안동지역 사회의 공적인 활동에도 항상 선두에 나섰다. 특히 1934년 대홍수로 낙동강 제방이 붕괴되면서 안동읍내 전역이 침수된 갑술년 대수해 때, 이들은 2만여 명에 이르는 이재민들을 위해, 구제기금 1500원(요즘 가치 3000만원)을 기탁했다. 1926년부터 근 10여년 동안, 안동지역에는 한해와 수해·대기근 등의 자연재해가 되풀이됐고, 이들은 그 때마다 거금을 출연해 이재민을 도왔다. 일제 강점기, 윤씨 형제가 이재민 구제와 학교 운영비 등으로 지원한 기금은 도합 1만여 원(요즘 가치 2억원)에 달했다.

— 정윤호 / 전 안동M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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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2호 (2022년 봄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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