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문화 산책 〈4〉 태사묘(太師廟) 소고(小攷) — 태사묘 '안묘당중수기'에 남겨진 忠節과 崇祖 정신

영가마당·안동 문화 ·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남승섭

2023年 04月 15日글 · 남승섭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6호(2023년 4월 15일 발행) 10면 〈안동문화 산책 4〉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필자를 '남승룡'으로 잘못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남승섭으로 바로잡았습니다.

남승섭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남승섭

태사묘(太師廟)는 안동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안동인이면 한번 쯤은 다녀갔을 곳이다. 서기 930년 1월 고려태조 왕건이 안동부 북동쪽 병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과 싸워 승리할 때 공을 세운 고창성주 김선평(金宣平)·권행(權行, (幸)), 장길(張吉, 張貞弼) 등 삼태사의 공덕을 기려 983년에 삼공신묘(三功臣廟)를 세웠고, 1613년 태사묘라 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그러나 태사묘와 병산전투에 대한 기록이 없어 호장 권창실(權昌實 1729년생) 공이 구전되던 이야기를 태사묘 내 '안묘당중수기(安廟堂重修記)'로 남겼는데 이를 이번 안동문화산책 코스로 삼고자 한다.

太師廟 현판

'…안묘당 1간은 안중(安中) 할멈을 봉제하는 곳이고, 1간은 안금이(安金伊)의 위패가 봉안된 곳으로, 태사묘 향사 때 제사하는데 안중 할멈의 제수는 묘에서 마련하고 안금이 첨지의 제수는 관가에서 봉송해 예부터 묘직이가 행사한다. 태사묘에는 고적이 많은데 제사 관련 유래 기록이 없어 나이 많은 묘직이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안중 할멈은 고려 때 여인으로 견훤이 안동에 침입할 때 삼태사가 왕건에 협응하여 항전할 당시 거리에서 술장사를 했는데, 이 술이 고삼근(苦蔘根)을 넣어 빚어서 그 맛이 좋고 마시면 이내 취하는 술로서 적의 무리가 마셔보고는 좋아하였다. 이에 노파는 술값은 받지 않고 은근히 적들에게 권하니 적장 이하 모두 취하여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때 노파는 삼태사 진중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니 삼태사 진영에서 견훤군을 급습하여 소멸시켰다. 이러한 안중 할멈의 기지를 가상히 여겨서 태사가 항상 문하에 거두어 두었다 했다.

安廟堂 현판

그리고 안금이는 관노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입해 부(府)성이 텅비었고 묘우만 우뚝 서있으니 돗자리에 삼태사 위판을 싸서 임남 국란리의 으슥한 산골짜기 바위굴에 모셔두고 낮에는 피하여 숨고 밤에는 다시 돌아와 조석으로 봉심하기를 거의 삼년이나 되었다. 난이 끝난 뒤 위판을 관에 갖다 바치니 관에서 소원을 들어주려 했으나… 안첨지는 "…다만, 제가 죽은 뒤에도 태사묘에서 제향하고 남은 음식 한그릇이라도 묘 곁에서 얻어먹는 것이 소원입니다…"라 하였다. 한 노파와 한 노옹을 나란히 일실에 모신 것은 참 잘한 일이라 하겠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였는데 남자로서 의로운 일을 행함은 당연하나 여자의 기이한 행실은 참으로 드물다 하겠다. 자고로 장수로서 공을 세우고 훈업을 이룬 이는 많지만 여자로서 기회를 알아서 기모(奇謀)를 쓴 이는 듣지 못하였다. 하물며 안중 노파처럼 순역을 분변하여 향배를 살핀다는 것은 참으로 남자들도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또 임란과 같이 적세가 강성할 때, 누구나 달아나 숨지 않겠는가. 대저 우리 태사공 셋 성씨의 후예로 이곳에 사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안금이는 타성의 백성으로서 전쟁이 치열할 때 남몰래 위판을 안전한 산간벽지에 모시는 것은 자손들도 미처 못했으며 여러 군자들도 못한 것이니 참으로 아름답고 장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노파와 첨지가 묘우 옆에 제향된 것은 진실로 마땅한 일이라 하겠으나 이는 고로(古老)의 전설일 뿐이며 문헌으로는 고증할 수 없고 이 일에 대한 묘우에 소장된 기록도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아! 안중할멈의 사실은 고려초의 일이고 안금이 첨지의 사실은 조선조 때의 일이니 연수로 상고하면 거의 700년의 세월이 떨어져 있고.. 제향한 그 증거도 없다… 전쟁 중에 기모를 써서 도운다는 것과 난리를 당해 위판을 보전한 것이 모두 안씨 성의 할멈과 첨지이고 읍호가 안동부로 승격된 것도 태사공이 공을 세운 뒤의 일이니 이 또한 특이하다... 아울러 묘당의 개건 년월을 기록하여 허물어지면 뒷사람이 다시 개수할 수 있게 이 기록을 남긴다."

이처럼 안묘당중수기가 전하는 태사묘는 지난 천여년 동안 충절과 숭조정신을 간직한 곳으로 안동의 정신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웅부공원–벽화마을–임청각–진모래를 잇는 구간과 삼태사의 병산전투 격전지인 진모래(長沙)에서 가시내(艮水川)에 이르는 약3km 구간을 역사문화유적지로 지정하고 탐방 둘레길을 조성하여 월영교와 연계한 관광자원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아울러 병산전투 시에 안중 할멈이 빚었다고 하는 고삼주(苦蔘酒)에 인문의 옷을 입혀 안동의 또다른 특산품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안묘당중수기를 통해 태사묘에 숨겨진 이야기를 되새기며 안동문화의 뒤안길에서 인문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 남승섭 /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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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6호 (2023년 봄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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