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5호(2023년 1월 15일 발행) 10면 〈안동문화 산책 3〉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필자를 '남승룡'으로 잘못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남승섭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안동에는 관광자원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다른 지방에 비해 풍부하다. 하나하나 겉으로 드러난 매력과 함께 안동 고유의 문화와 정신이 배여 있다. 볼거리에 인문(人文)의 옷을 입혀 그 뒤에 숨어 있는 설화,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연재한다.
남승섭 —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조직위원, 경상북도청년유도회장, 하회마을 문화유산등재 추진위원
영호루(映湖樓)는 제비원·영남산과 함께 안동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그 영호루는 원래 안동철교 북단 강변에 있었는데 낙동강의 범람으로 유실과 중수를 거듭하다 1970년에 강 건너에서 안동 시내를 바라보는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옛터에는 유허비만 남아 있다. 영호루의 확실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삼대루(三大樓)로 손꼽힌다. 1274년 안동 출신 충열공 김방경 장군이 일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영호루에 올라 읊은 시는 오랜 역사를 방증하고 있다.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했을 때 영호루에 머물렀고, 그 이듬해인 1362년에 하사한 공민왕 친필 '映湖樓' 현판〈사진〉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 친필 '映湖樓' 현판
그동안 5차례의 유실과 7차례의 중수를 거듭하며 숱한 애환을 겪은 영호루는 이건 복원되면서 철근콘크리트의 반영구적인 구조물로 남게 되었으니 '루가 호숫가에 인접해 있으며 기둥과 서까래와 용마루와 들보의 그림자가 거꾸로 어지럽다.(樓臨湖浸楹桷甍棟影倒凌亂)'고 피력한 백문보의 금방기가 660년이 지난 오늘을 예언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영호루에는 역동(우탁), 양촌(권근), 점필재(김종직), 농암(이현보), 퇴계(이황) 등 명현선사(名賢善士)들의 시판이 게첩되어 있다. 포은(정몽주)은 '동남쪽 여러 고을을 둘러보니 영가의 경치가 제일 아름답구나. 고을의 산천형세가 최고이러니 인물도 많아라 장상가가 분분하네 (閱遍東南郡縣多 永嘉形勝覺尤加 邑居最得山川勢 人物紛然將相家)'라 노래하였으니 예로부터 영호루의 아름다운 풍광과 인다(人多) 안동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명현 석학들이 즐겨 찾던 영호루는 안동부의 영빈관 역할과 각종 행사장이자 민초들의 소통 공간으로서 중추적 기능을 감당했었다. 또한 조선초 중앙관료 출신 13분이 낙향하면서 거칠어진 향풍진작을 위해 조직한 약550년 역사의 우향계(友鄕稧) 모임도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했다고 하니 지역을 넘나드는 경향 선사(善士)들의 만남 장소이기도 하였다. 목은(이색)도 영호루 기문에서 '이곳 안동은 고려가 중흥한 곳이며, 복주인은 나뉘지 않고 늘 도를 지킨다(維此安東我重興所 匪維福人保世之常)' 하여 선인(善人)과 적덕(積德)을 추구하던 안동의 선사들은 이곳에 오를 때마다 호수에 비친 자신과 영호루를 벗하며 성찰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일찍이 맹자는 '벗한다는 것은 그 덕을 벗하는 것이니 덕 외에 내세우는 것이 있어선 안 되며, 한 고을의 선사라야 한 고을의 선사들과 벗할 수 있고, 한 나라의 선사라야 한 나라의 선사들과 벗할 수 있고, 천하의 선사라야 온 천하의 선사들과 벗할 수 있다. (友也者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 一鄕之善士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斯友天下之善士)'고 하였듯이 낙동강 맑은 물에 자신을 드리우고 천하의 선사들을 벗으로 맞이했던 영호루! 이처럼 영호루가 전하는 푸근하고 넉넉한 포용과 적덕의 교훈을 실천해온 일향 영가의 선현들은 늘 올곧은 선비정신과 건전한 향풍진작에 앞장서 왔다. 실제로 근래 안동의 출향 인사들이 낙향해 결성한 귀천회(歸川會)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우향계처럼 향풍진작과 고향발전에 큰 기여와 역할을 기대해 본다.
오늘도 영호대교와 버들섬 맑은 물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운 영호루! 이름 그대로 자기 모습을 호수에 비추며 천년 세월을 버텨온 영호루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할까? 영가마당에서 찾고자 하는 '인문(人文)의 옷'! 그 옷의 사이즈는 품도 기장도 아닌 바로 서로를 품어주는 포용과 소통일 것이다. 금번 문화산책은 호수에 비친 영호루의 그림자로부터 반추(反芻)와 소통(疏通)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안동의 상징 영호루가 자동차 도로로 고립된 지 수십 년! 원래 위치인 구지(舊址)에 목조건물로 복원하거나 4차선 도로를 강변쪽으로 돌리고 인근 충혼탑과 함께 공원화하여 시민들의 접근이 편리하게 마음의 길을 넓혀 줄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 남승섭 / 한국국학진흥원 자문위원
함께 보기
- 안동문화 산책 1 — 안동팔경(安東八景) (8-3호)
- 안동문화 산책 2 — 안동의 3다3무(三多三無)를 아시나요 (8-4호)
출처: 《영가회보》 8-5호 (2023년 겨울호) 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