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 공무원의 행복 찾기 〈4·끝〉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감사하며 살아가기
영가칼럼 · 前 서울부시장 권영규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5호(2023년 1월 15일 발행) 8면 연재 마지막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연재명을 '평직 공무원', 필자를 '정만규'로 잘못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퇴직 공무원', 권영규로 바로잡았습니다.
前 서울부시장 권영규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2019년 11월28일 파라과이로 출국하기 전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에서 폐에 이상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고, 출국이 예정된 당일 아산병원에서 왼쪽 폐의 상엽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잘라낸 림프절 23 개중 2개에서도 미세한 암 세포가 발견되었고, 수술 3주 후부터 독성 화학항암제 시스플라틴과 비노렐빈을 동시 투여하는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나타난 폐암은 내 인생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마약성 진통제 바늘을 두개나 꽂고 핏물과 소변을 배출하는 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는 '혼자서 화장실 가는 환자'가 한없이 부러웠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목이 붓고 속이 메슥거릴 때면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킬 수 있다'는 자체가 곧 축복임을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는 자체가 곧 행복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다섯 권의 책을 썼다. 서울시 행정 경험은 「시민행복을 디자인하다」, 파라과이에서 겪었던 일은 「사랑해, 파라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콜롬비아 자문활동은 「¡Mas allá del límite!」(한계를 뛰어넘어)란 제목으로 스페인어로 출간했다. 책을 쓰고 지난 날을 뒤돌아보면서 나는 정말 많은 복을 누리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살이 되어서야 전깃불이란 걸 처음 봤던 촌뜨기였지만 40년 후에는 세계적 대도시 서울의 최고 지위까지 올랐고, 50년 후에는 경험과 지식을 나누겠다고 세상을 누비고 다녔다.
내 곁에는 늘 고마운 분들이 함께 했다. 정성을 다해 키워 주신 부모님, 사랑 넘치는 아내와 자녀들, 우애 깊은 형제자매들, 수시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친구들, 이웃들, 그리고 밤을 새우며 일했던 동료들! 이런 분들을 가진 나는 정말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덕분이다. 전쟁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갈등하고, 부대끼며 살면서도 정말 짧은 기간에 경제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덕분이다. 나는 서울시에서 일하며 성장하고 발전했다. 나를 성장시키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 서울시에 감사한다. 남미에서도 즐겁고 의미있게 살았다. 보람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주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KOICA에 감사한다.
지난해 나에겐 몇 가지 일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 중에서 명예직인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이사장직을 선택하였다. 2002년 월드컵추진단장 시절 자원봉사자들과 신나게 일을 했었고, 이들의 봉사활동이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자원봉사센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평소에 하고 싶어했던 그 일, 서울의 자원봉사를 활성화하고 센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봉사자에게는 보람을, 봉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자원봉사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내 행복을 추구하는 내 삶의 과정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길, 그런 일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몰입할 것이다.
— 권영규 / 前 서울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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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5호 (2023년 겨울호) 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