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지식인이자 안동 선비 김원 원로회원 — "전통을 지키되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기획인터뷰〉 김원 원로회원 · 《영가회보》 8-10호 7면

2024年 04月 17日글 · 편집실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0호(2024년 4월 17일 발행) 7면 〈기획인터뷰〉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기획대담]'은 지면대로 〈기획인터뷰〉로 바로잡았습니다. 리드의 생년·나이와 약력의 출생연도는 싣지 않았습니다. 지면에 설명이 없는 사진에는 편집실이 설명을 달았습니다.

김원 김원 원로회원

"제가 펴낸 유교 관련 책자가 조만간 영문으로 번역돼 나올 것이라고 하네요" 안동 천전(내앞)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고택에 은일자적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김원 전 서울시립대 부총장. 화제가 된 『공자는 미래학자인가』라는 수필집은 미국에 거주하는 아들이 읽어보고는 글로벌 도서 전문 전자상거래기업인 아마존에 영문으로 번역을 의뢰해 놓았다고 한다. 봄볕이 따사롭던 3월22일, 문상부 영가회장과 함께 김 전 부총장 댁의 잘 다듬고 가꾼 고택과 뒷동산을 거닐며 저서와 유림활동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 『공자는 미래학자인가』란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논어』의 문장 가운데서도 현대인이 실천할수 있는 40편을 추려서 현대인이 살아가고 실천해야할 삶의 방향을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전통적인 유교가 현대를 살아가는 실천적인 유교와는 괴리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비판적인 내용이 많지요. 제 아들이 '한국 전통사회에서 유교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영향을 주었는지 사례연구자료로서 미국내 학계에서도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고 하더군요.

― 올해 3월 도산서원 춘계향사에 초헌관(도집례)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개인적으로도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제 지금의 생활이 퇴계선생의 경(敬)의 삶과 전통적인 유가의 도리를 나름대로 본받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옛 것을 숭상하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변혁을 도모해 보려는 평소 생활철학이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가 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는 안동향교에 의성김씨 문중을 대표해 활동하면서 원로고문으로 특강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 전통적인 유교집안이지만 평소 생활을 들여다보면 무척 혁신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논어』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글귀를 좋아합니다. '옛 것을 통하여 새롭게 혁신하자는 내용이지요. 즉 시대에 맞게 자신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할 때 아들들에게 제사를 물려주면서 "형식에 매이지 말라"고 강조해주었습니다. 조상을 숭상하는 마음과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그 방법에서는 형식에 구애받지 말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제사를 준비하면서 'welcome to all ancestors'(조상님들을 환영합니다)라고 영문으로 쓴 지방(紙榜)을 보내면서 이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오더군요.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지요. 평소 제례절차 등에서 저의 실천적인 사고가 저의 선친으로부터는 "너는 무종생(無種生)이냐"라는 비난까지 받기도 했지요.

사실 의성김씨 방정공파 11대 주손이지만 학업 때문에 7살에 고향을 떠나 안동·서울과 미국 등지를 다니다가 2017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릴적 4대(代)가 함께 생활하면서 익힌 유교적 전통적인 생활환경에 영향을 받아 유가의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지요. 그러나 자라면서 시대적 흐름을 따라 변화를 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개혁주의자로 차츰 변모했습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에 학생들에게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다가 미국으로 유학가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도시계획학 1호박사'를 따게 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변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고택에서 50m 남짓 떨어진 뒷동산에 김 부총장이 청계공 김진의 6세손 김세장 선조부터 15세인 선친까지 10대(代)를 모신 추모제단을 둘러보았다. 전통적 묘도 아니고 김 부총장 이후 자손들까지 쭈욱 함께할 수 있는 가족묘 형태였다. 전통 유가로 봐서는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 영가회와 인연은 어떻게 되는지요.

△ 1977년에 영가회 설립당시에는 서울시립대에 재직하고 있었지요. 당시 안동중학교 2년 선배이신 이상두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류혁인 청와대 공보수석(전 공보처장관) 등이 안동사람들 모임이 있다고 가보자고 해서 가서 창립회원으로 함께하게 되었지요. 창립초기에 영가회지 발간과 편집, 책자 발간, 사회 등을 많이 맡아보았습니다. 2003년 영가회 3대 금창태 회장 취임때쯤 정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장'을 맡았다가 그후 2005년부터는 2016년까지 미국에 머물면서 활동이 뜸해졌지요.

고택 앞에서 고택 앞에서 문상부 영가회장(왼쪽)과 김원 원로회원

― 귀촌인들의 모임인 귀천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 2017년 1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아내와 고향마을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저처럼 은퇴하고 고향에 와 있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미국에 머물던 2011년에 김휘동 전 안동시장 등과 귀촌과 같은 의미인 '귀천회(歸川會)'라고 조직했지요. 이후 회원수도 늘고 해서 현재 25명이 됩니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인구감소나 지역소멸 등으로 인한 고향을 걱정하고 있지요. 그런 안동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공감된 한뜻으로 매월 정기적인 '귀천포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영가회 회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 누구에게나 고향은 정신적인 뿌리입니다. 지금의 영가회원들은 고향이 거의 안동이잖아요. 병원·교육시설 등은 오히려 서울보다 더 훌륭하다고 봅니다. 안동에는 15만인구에 15개 병상 이상을 갖춘 종합병원이 3곳이나 있습니다. 서울처럼 진료를 받으려고 대기할 필요도 없지요. 안동이 전기나 수도도 없던 예전의 고향이 아닙니다. 젊은 자식세대들이야 안동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고 '보수적,유교적,양반의 고장'이라고 꺼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은퇴하고 나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팔면 고향에 와서 평생을 편히 살 수 있지 않습니까. 60~70대 연령층을 중심으로 은퇴했으면 정신적인 뿌리인 안동 고향으로 돌아와 살아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감히 권합니다.

〈대담=류준걸 편집위원장〉


김원 원로회원은 안동 내앞에서 태어나 안동고, 성균관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뒤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해외두뇌 유치계획'으로 귀국하여 서울시립대에서 도시공학과 初대학과장을 거쳐 부총장을 역임했다.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중앙도시계획위원회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내앞 만송헌 고택에 머물면서 수필집 『공자와 예수가 바둑을 두다』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전문서적 7권과 수필집 및 여행기 9권을 내놓았다. 요즘에는 어릴적에 4대라는 대가족이 함께 살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실화를 근거로 가칭 '만송헌 이야기'와 미국에 12년간 머물면서 지중해 등 전세계를 크루즈 여행했던 경험담을 모아 '크루즈로 세계를 가다' 라는 내용으로 수필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함께 보기

출처: 《영가회보》 8-10호 (2024년 봄호) 7면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