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9호(2024년 1월 22일 발행) 10면 연재 〈安東春秋 100년〉 두 번째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저항과 협력의 경제역사'와 필자 '편집실'은 지면대로 '저항과 협력의 경계에서'와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으로 바로잡았습니다.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1918년 겨울부터 유행성 감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감기의 참상은 전쟁보다 심했다. '스페인 독감'이라 했다. 스페인 독감은 진행 과정에서 세 번의 확산 파동을 그렸다. 1918년 6~7월과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1월초, 그리고 이듬해(1919년) 초에 다시 확산됐다가 4월에 사라졌다. 전 세계에서 5억명이 감염됐다, 사망자는 최소 5000만명, 많게는 1억명까지 추산됐다. 유럽에서 확산된 스페인독감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만주 철도와 한반도의 종관철도가 독감을 매개했다. 조선에서는 '유행성 감모'라 했다.
'조선에서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1918년 9월, 처음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감염이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에서 전파되어 왔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는 듯하다. 이 질병은 북쪽으로부터 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퍼졌다. 10월 중순에 이르기 전에 전염은 최고조에 이르렀다'(천명선·양일석, 1918년 한국내 인플루엔자 유행의 양상과 연구현황, 2007)
조선의 상황은 끔찍했다. 700만명이 감염됐다. 10명 중 4명이 환자였다. 14만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숨졌다. 식민지 백성의 삶은 고단했다. 빼앗긴 산하에서 철도 부역에 시달리고, 철도를 따라온 감기에 목숨을 잃었다. 옛 군주(고종)가 독살됐다는 소식도 철도에 실려 왔다. 원흉은 일제였다. 나라 잃은 백성의 분노가 비등했다. 척식(拓殖)과 철도와 유행성 감모가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안동에서도 11개 지역에서 1만여명이 참여했다. 만세운동은 3월13~27일까지 보름동안 14차례나 이어졌다. 3.1운동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불꽃이었다. 나라의 주인은 군주가 아닌 백성이었다. 민국(民國)의 시작이었다.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졌다. 황제는 죽었다. 10월에 레닌이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붉은 깃발이 러시아를 물들였다. 볼셰비키가 이끄는 소비에트 정권이 탄생했다. 제정 러시아를 전복시킨 혁명의 깃발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극동으로 이동했다.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가 사회주의 사조에 물들어갔다. 또 하나의 팬데믹(Pandemic)이었다.
독립의 길을 찾던 민국의 의병들에게, 러시아 혁명은 구세의 빛이었고 복음이었다. 반제투쟁은 독립과 민국 건설의 전제였다. '꿩 잡는 매'가 필요했다. 쥐만 잡을 수 있으면, 흑묘(黑猫)든 백묘든 상관없었다. 러시아 혁명은 일제를 뒤엎을 고양이요, 매였다. 민국의 의병들은 '막사과(Moskva)의 북풍'을 흠향(歆饗)했다. 북풍은 일제가 만든 철도를 따라 퍼져나갔다. 일제는 북풍이 불러올 혁명을 경계했다. 독립에 갈급한 의병들은 북풍의 진원지로 들어갔다.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근원을 생각한다)의 길이었다.
— 정윤호 / 前 안동MBC 보도국장
함께 보기
- 安東春秋 100년 〈1〉 국망(國亡)…서러운 산하(山河) (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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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9호 (2024년 겨울호) 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