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東春秋 100년, 저항과 협력의 경계에서〈3〉 1922년 겨울… 막사과(Moskva·모스크바)의 시절 안동인들의 인연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 · 《영가회보》 8-10호 9면

2024年 04月 17日글 · 정윤호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0호(2024년 4월 17일 발행) 9면 연재 〈安東春秋 100년〉 세 번째 회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저항과 협력의 경제역사 ③'과 '막사라', 필자 '편집실'은 지면대로 '저항과 협력의 경계에서〈3〉', '막사과',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정윤호 前 안동MBC 보도국장 정윤호

1922년 1월 폭설이 내린 북국(北國)의 겨울은 스산했다. 눈 쌓인 모스크바 야로슬랍스키역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들어왔다. 두꺼운 코트에 샤프카(동물의 모피로 만든 털모자)를 쓴 조선인들이 플랫폼에 내렸다. 모스크바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가한 조선대표단이었다. 연장자인 김규식이 앞서 걸었고, 안동 사람 김시현·김지섭·김재봉이 뒤를 따랐다. 이곳에서 김시현과 인연을 맺게 될 권애라도 거기 있었다.

〈장면 1〉 김지섭(당시 39세)과 김재봉(당시 32세)은 풍산면 오미동 한 마을에 사는 일가였고, 김시현(당시 40세)은 산 너머에 살았다. 안동에서 경성(서울) 가는 길도 아득했던 시절, 하물며 모스크바라니… 가늠할 수 없는 거리, 수만리 이역에서 지연과 혈연이 얽힌 고향 선후배가 같이 걷고 있었다. 대소가의 안부와 사회주의라는 신사조 등이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오미, 현애, 가일, 우렁골, 외내… 모스크바에서 들리는 억센 안동 사투리와 암호 같은 지명들, 불협화음이었고 초현실적 풍경이었다.

이보다 3년 전인 1919년 기미시위 때 김시현은 상주에 있었고, 김재봉은 안동에 있었다. 둘 다 경찰에 잡혔다가 풀려나 중국을 떠돌았다. 만난 적은 없었다.

〈장면 2〉 억센 안동 사투리가 잦아들고, 젊은 여성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조선 여성 4명의 수다에는 권애라가 이끌었다. 기미 시위 때 감옥에 들어갔던 얘기였다. 권애라가 들어간 서대문 감옥 8번 방. 그의 이화학당 2년 후배 유관순이 들어왔다. 반갑고 서러워 부둥켜안고 울었다. 정기검진 받던 날, 기생 32명을 이끌고 경찰서 정문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원기생 김향화도 있었다. 그는 서대문 감옥 8번 방에서 소리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개성난봉가'는 길었고, '고고천변(皐皐天邊) 일륜홍(一輪紅)'은 짧았다. 권애라의 소리는 김향화 못지않았다. 청출어람이었다. 간수의 매질과 고문에 눈물 나던 날, 당시의 '운동권 여대생과 의식화된 술집 아가씨'는 함께 노래 불렀고 박꽃처럼 웃었다. '춘삼월의 독립군'이었다. 이듬해 감옥에서 나온 권애라의 일과는 시국강연이었다. 개성난봉가로 양념친 권애라의 강연은 재미있었다. 난리가 났다. 권애라는 수천 명의 청중을 몰고 다니는 '셀럽'이 됐다. 그해 여름 권애라는 경성에서 사라졌다. 모스크바에서, 서대문 감옥 얘기로 수다 떠는 조선 여성이 바로 그 경성의 스타 권애라였다.

〈장면 3〉 1월17일, 모스크바 크렘린 소극장에서 극동인민대표회가 시작됐다. 코민테른은 혁명의 이식지로 조선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제시한 조선 독립의 길은 '민족운동을 통한 농민혁명'이었다. 김재봉은 이 길을 걸었고, 풍산 우렁골의 이준태를 통해 가일의 권오설, 외내의 김남수로 이어졌다. 안동의 화성회와 풍산소작인회가 실행조직이었다. 김남수는 화성회, 권오설은 풍산소작인회를 이끌었다.

〈장면 4〉 모스크바에서 극동인민대표회의가 이어지던 주말이었다. 권애라는, 모스크바 인근의 톨스토이 고택에 있었다. 그 때 그 시각, 김시현도 거기 있었다. 무장투쟁을 꿈꾸는 거친 사내의 얼굴에 데카브리스트(1825년 러시아제국에서 청년장교들이 전제정치에 반대해 일으킨 반란)가 겹쳤고, 가슴에는 톨스토이가 있었다. 권애라의 눈빛이 빛났다. 이때 김시현의 나이는 마흔이었고, 권애라는 스물여섯. '동지'라는 이상이 현실을 앞섰다.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의 나이차는 18살이었다. 모스크바 회의는 2월에 끝났다. 권애라는 중국 소주(蘇州)로 떠났고, 김시현은 상해(上海)로 돌아갔다. 김시현과 권애라의 아들 김봉년은 1922년생이었다.

— 정윤호 / 前 안동M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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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10호 (2024년 봄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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