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9호(2024년 1월 22일 발행) 10면에 실린 글과 그림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김대원 미술관장 김대원
안동의 정자는 대부분 작고 간단한 형태이며,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위치에 있다. 특히 향촌의 정자는 생활의 여유를 즐기고 유교적 이상을 되새기는 공간으로서 기능을 담당한다. 이곳에서 사대부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성리학 사상을 표현하는 글을 짓기도 하고, 한가롭게 머무르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또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거나, 성현과 조상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예전의 정자는 그 속에 머물면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정자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정자는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과거의 정자는 휴식처이자 사람이 편하게 모이는 공간이며 지나가다 잠시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자는 문화재이며 관광지이다. 더 이상 정자에서 한가한 삶을 음미하며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부를 하더라도 산골의 정자가 아니라 도회지의 근사한 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대세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림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결합된 정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림 속의 정자에서 옛 사람들의 편안한 마음의 자취를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산수화에서 정자로, 정자에서 다시 구곡을 찾아서 그림을 그리려고 다니는 나 자신이야말로 자연을 벗하고 붓으로 노래하는 행복한 화가라고 하겠다.
김대원 〈고산정〉, 60×98cm, 2021년작
도산면 소재 고산정(孤山亭)은 청량산(淸凉山)을 배경으로 삼아 앞에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정자는 이황(李滉)의 제자인 금난수(琴蘭秀;1530~1604)가 세운 것이다. 청량산을 좋아한 이황은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한 고산정을 자주 방문했다. 강 건너편에는 송림이 우거진 고산이 보이는데 그쪽 절벽이 내병대이고 정자 쪽이 외병대 절벽이다. 고산정은 빼어난 절경으로 인하여 도산구곡의 제8곡이 되었다.
길안면 소재 만휴정(晩休亭)은 김계행(金係行;14311517)이 만년을 보내기 위하여 세운 정자다. 그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익혔고, 50세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으로 인하여 삶에 굴곡이 많았고 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70세에 벼슬을 버리고 안동으로 낙향했는데, 고향인 풍산을 떠나 그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길안의 묵계(默溪)에 자리 잡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계곡과 정자의 이름처럼 늘그막에 조용한 곳에서 쉬어간 셈이다.
김대원 〈만휴정〉, 95×68cm, 2018년작
이곳은 정자뿐만 아니라 바로 앞의 폭포, 넓은 바위 위로 흐르는 계류, 그리고 주변의 산세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2011년 명승 '안동 만휴정 원림'으로 지정되었다. 이 정자 역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소개되어 유명해졌다.
실제 이곳을 방문해보면 계곡 주변이 좁아서 넓은 조망이 확보되지 않는다. 만휴정에서 김계행은 늦게 얻은 휴식을 만끽했고, 드라마를 보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만족스러운 인증샷을 찍을 수 있으나, 화가로서 이 정자를 근사하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대원 〈백운정〉, 75×143cm, 2020년작
임하면 천전리의 백운정(白雲亭)은 김진(金璡;15001580)의 아들 김수일(金守一;15281583)의 정자다. 김진은 전형적인 안동선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그는 젊은 시절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했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는데 몰두했다. 자신의 8남매도 엄격하게 가르쳐서 다섯 아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오룡지가(五龍之家)'를 이루었다. 이황이 정계에 진출하여 뜻을 펼쳤다면 김진은 고향에 은거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셈이다.
이곳도 2007년에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을 사이에 두고 한쪽 언덕에는 백운정이 있고, 건너편에는 소나무 숲인 개호송(開湖松) 숲과 내앞마을이 있다.
— 김대원 / 미술관장
함께 보기
- 청백리(淸白吏) 보백당(寶白堂) — 만휴정 이야기 (8-8호)
출처: 《영가회보》 8-9호 (2024년 겨울호) 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