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 40년사》 404~407쪽에 실린 임낙윤 회원의 기고문입니다. 지면을 옮겼습니다.

조상들의 발자취와 숨결이 배어 있는 곳, 안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예로부터 안동은 산수가 수려하고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웠던 유서 깊은 고장으로, 안동인만이 간직할 수 있는 정신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다.

60년대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난생처음 서울에 왔을 때 시민들은 독특한 사투리에 고향을 물었고, 안동이라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안동이란 이유만으로 좋은 곳이라며 높이 평가를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한 기자(경향, 최병준)의 고백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안동은 단지 벼슬아치를 많이 배출한 양반 골이 아니라 선비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선비 골이다. 말만 앞세우지 않고, 목숨을 던지며 기상과 정조를 지켰던 꼿꼿한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요즈음 세상이 참 어지럽다. 광화문 한가운데 온갖 날이 선 목소리들이 맞서는 것을 들을 때마다 안동이 떠오르는 것은 꼿꼿했던 선비가 그리워서인가보다."

그렇다, 사람들이 침이 마르도록 안동을 칭찬하는 이유는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안동의 선비정신이며 그 내용은 청빈, 지조, 예의이다.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의 고혈로 재산을 축적할 때 안동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눈물겹도록 청빈했으며, 옳다고 믿는 생각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는 미덕을 몸소 실천했다.

이런 선비정신이 역사적 고비마다 나라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삼국의 재통일

멀리는 후삼국의 재통일이다.

고창전투(안동, 월곡)에서 호족들은 성격이 급하고 부정을 일삼는 견훤 대신 고려의 왕건을 선택함으로써 천여 년에 걸친 동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구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고려, 조선에 이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

임진왜란

다음은 치욕스러운 임진왜란이다.

왕의 무능, 당파싸움,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조선은 나라가 아니었다. 이때 봉건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양을 찾던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1592년 4월 부산 침공 이후 20여 일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60여 일 만에 국토의 대부분이 일본군에 넘어가고 말았다. 선조는 불타는 한양과 울부짖는 백성들을 뒤로한 채 의주로 도피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 조국을 버리고 청나라로 도주를 결심했다.

이때 목숨을 걸고 "전란에 임금이 남의 나라로 도망가면 조선은 우리 땅이 아니다" 며 극구 만류한 선비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류성룡 대감이시다.

그 당시 피보다 진하고 나라보다 소중한 것이 당파였으나 대감(동인)은 당론을 초월하여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하고, 성벽을 쌓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비했다. 이런 구국의 결단을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 안동 선비정신으로 단련된 선생의 인품, 당파를 초월한 공평무사한 일처리,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 모습이 선조와 대신 그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선생이 없었다면 임금은 중국으로 도망가고, 이순신마저 없는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 되었거나 청나라와 일본에 의해 분할점령 되었을 것이 불을 보듯 하다. 선생이 없는 이순신은 있을 수가 없고, 이순신 없는 조선 또한 그러했다.

구한말

조선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구한말 강대국들은 원료 확보와 제품을 팔기 위해 해안에 포성이 진동할 때, 부끄럽게도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그칠 줄 모르는 권력 암투로 국모는 시해되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안동의 수많은 애국열사, 지사들은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옥사하였다.

오늘의 삼각파고(三角波高)

그러나 이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으로 해방은 되었으나,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삼각파고를 만났다.

  • 첫 번째 파고는 이념에 의한 국토의 분단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념에 의해 재단되고, 남북과 남남갈등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애환과 수난을 겪고 있다.
  • 두 번째 파고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편입이다. 왕정과 식민지에서 경험하지 못한 생면부지의 민주주의는 장점보다 단점이 노출되어, 분열과 투쟁으로 국력은 낭비되고 국정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 세 번째 파고는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전래다. 유교, 불교 등 기존 종교와의 갈등과 정치, 사회, 문화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와 같은 삼각파고는 못난 권력자들의 정권 획득을 위한 분할통치에 악용되어 공직은 전리품이 되고 부정부패가 횡행하여,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보다 반칙과 혈세를 취하는 자들이 능력자로 영웅시되는 비극이 연출되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순기능은 설 자리를 잃고 역기능이 만연하기 마련이다. 지금 광화문에 이념, 빈부, 지역, 세대로 분열된 깃발과 아우성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것도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시민 · 시장 · 정부

자유민주주의는 독재나 왕정보다 난해하고 양날의 칼처럼 위험한 것으로 시민, 시장, 정부를 핵심 구성요소로 한다.

  •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자동 조절되고, 기술혁신에서 오는 초과이윤은 재투자와 세금으로 환수되는 정의롭고 공평한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초창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은 3만 불 시대에서는 오히려 족쇄가 되어 생산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 정부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자를 의미한다. 심판자인 정부가 자본과 결탁하고 혈세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변질되면 자유민주주의는 파괴되고 국가와 국민은 불행해진다.

다시 청빈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 있다. 삼각파고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데서 오는 갈등, 좌절, 분열, 차별, 투쟁의 국내 문제와 재편되는 국제질서가 맞물려 국가 명운이 한 치 앞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 안동선비정신의 요체인 청빈, 지조, 예의를 지키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기본적인 해법이라 생각된다.

그중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지도자와 공직자의 청빈이다.

월맹의 호치민은 독신에 옷 두 벌, 반찬은 세 가지를 넘지 않았다. 이런 지도자의 청빈 앞에서는 최강의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도 힘을 쓰지 못하였으며, 부패한 월남은 허망하게도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군사적 동맹은 휴지조각이 되고, 현대식 무기는 고철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냉엄한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공직자를 비롯하여 기업과 국민들은 안동의 선비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5천년 변방의 역사를 청산하고 통일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조국, 다시 "안동의 향기" 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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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 40년사》 404~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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