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권기성(權笆成) 회원께서 《영가회 40년사》(368~374쪽) 에 직접 기고하신 글을 편집실이 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권 회원은 〈鄕魯之鄕의 本鄕에 대한 感懷〉(
/archive/geul/geul-hyangno-bonghyang) 와 한 글로 두 자리를 영가회 40년사에 남기신 분으로, 이 글은 앞 글이 추로지향의 답방기였다면 — 이 글은 풍수의 묘리(陽宅 · 陰宅) 를 짚으시고, 자신을 양어머니 · 친어머니로 풀어내신 자서전적 에세이 입니다. 7페이지의 가장 긴 호흡으로 자신의 인생의 단정하게 정리한 자리입니다.
陽宅(양택), 풍수의 본바탕
우리 인간에게 직 ·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 · 음택은 그야말로 중차대한 풍수의 妙理다. 산 사람은 양택풍수, 죽은 사람은 음택풍수. 흔히 양택풍수 하면 음택풍수와 크게 다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이 둘이 좋은 터를 고르는 이론이나 방법은 모두 똑같다.
양택이나 음택 모두 이 地理五決(地穴砂水向) 에 의해서 좋은 터와 山을 정한다. 이렇게 정한 터에 산 사람을 위한 거주 공간을 진상에 마련하면 양택풍수가 되는 것이고, 죽은 자를 위한 幽宅을 지하에 마련하면 음택풍수가 된다.
(土宅은 사람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터를 잡아 (양조), 그 터 위에 건물의 형태와 구조 · 방위 및 실내 공간 배치를 추구의 좋은 기운을 받도록하여 생활에 유익한게 해야 한다. (家相學) 이렇게 땅의 기운인 地氣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일생의 대부분을 주택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므로, 태로 그 주택이 어떤 땅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일이 달라지게 되므로, 이사를 간다든지 또는 집의 가상을 바꾸어 운을 바꿀 수 있다.
풍수의 시작은 명당의 결
또 터에 대하여 풍심의 방향이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물은 생명체에게 생명의 근원이 된다. 물이 있어야 마음이 형성되고 마음이 있어야 문화가 일게 된다.
특히 우리 한국은 西山東流 라는 결을 가지고 있다. 어느 도시이는 — 山木五江 으로 한반도 지형.
풍수와 도시, 동서양의 결
이 세상에 이름이 있는 나라들의 수도는 거의 모두 동서로 흐르는 物水를 갖고 있다. 그 예로 — 뉴욕 · 워싱턴 · 북경 · 런던 · 파리 · 모스크바 · 베르린 · 로마, 그리고 安東 등을 들 수 있다. 모든 풍수의 시작은 명당.
양어머니와의 자리
권 회원은 어려서 양어머니(숙모님) 로 자라셨다. 친어머니가 아닌 숙모님로 살이를 보내신 자리.
"고추장의 아기를 받아내면서 숙모님의 기쁨이 어떠했으리라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숙모님은 사촌들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입장이지만, 전혀 매도근 음을 돌렸다고 후의 나에게 술회하셨다."
고려서 너무 어려서 짐자력가 가다리고 있었지만, 내가 세상 되던 해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우리 가족은 안동에서 경주로 옮겨 갔다. 어린 시절부터 집이 무근으로 — 어른의 시집을 인의 시집 ('나의 엄마가 오셨다' 라는 자리).
양어머니의 일생, 1994년 발견된 풍양
"1994년 동년의 위에 풍양이 발견되어 입원하셔서 자라 후 84세의 일기로 흥세적 새상을 떠나셨다. 정상이 되어지 어연 60여년, 남남 같이 지내셨던 일생을 마치신 것이다."
10년 때부터 40년이 넘게 고향을 함께 하여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며 나도 어머도 아이도 서업게 울었다.
3년 후 친가의 아버지께서도 — 93세로 천수를 누리고 별세하셨다. 이로써 생 · 양가의 부모 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글의 마지막 — 음택의 결
그로부터 다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긴 공직 생활을 마무리 별 셋째 후 유일은 살아가고 있다. 어느 덧 고희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이 나이에도 두 분 어머니들 회상하면 그 짙신 모성과 사랑한 만일이 그러워진다. 어려 가지 면에서 많이 다르고만, 그래서 나에게 남거 진 추억은 자기 색다르지만, 그래도 어두까지로 두 분이 아침나이 줄어한 즌 그 차이한 사랑은 독감스 노들도 내 핏줄에 닿어 흐르고 있다."
— 한 안동인의 자서전적 에세이가, 양택 · 음택의 풍수 결로 시작해 두 어머니로 단정하게 닫히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