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8호(2023년 10월 15일 발행) 4면 〈기획인터뷰〉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리드의 생년과 나이 표기는 싣지 않았습니다. 이전 판의 '[기획대담]'은 지면대로 〈기획인터뷰〉로 바로잡았습니다. 인물 사진에는 지면에 설명이 없어 이름을 달았습니다.
류목기 제2대 영가회장
늦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14일 서대문 풍산그룹 사무실에서 류목기 영가회 2대회장(풍산그룹 상임고문)을 만났다. 문상부 영가회 회장과 함께였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2시간여 나누었다.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를 한치도 흩트리지 않았다. 천생 안동양반이다. 류 전회장을 아는 주위사람들이 '안동정신의 산증인이자 안동의 대부'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공무원으로 시작해 교사, 강북삼성병원(구 고려병원) 행정부원장, 여행사 사장, 한솔저축은행장, 풍산그룹 대표이사 부회장 등 다채로운 경력이다. 근무했던 직장마다 전인미답의 큼직큼직한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주류씨 수곡파종회장을 맡기도 했다. 사회활동을 하기에는 적지않은 연세지만 지금도 전성기에 못지않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풍산그룹 상임고문이라는 직책 이외에도 명문으로 성장한 풍산고등학교의 학교법인 병산교육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행정이나 정치관련 인사를 비롯해 각종 단체들로부터 해당분야 조언이나 의견을 구하기 위한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풍산그룹 선대 류찬우 회장과 인연이 닿아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보필해온 류진 회장이 올해 8월 예전 전경련이 이름을 바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풍산그룹을 이끌어온 경영 철학에 세간의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 지금 연세에 대그룹에서 상임고문으로 직함을 갖고 계신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을까요.
△한평생 직장생활을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지키며,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노력했다. 풍산그룹 선대 회장도 그랬지만 류진 회장도 가풍과 사풍(社風)이 사심이 없는 분이셨다. 그룹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 그 분들은 제가 하는 얘기는 웬만하면 다 들어주셨다. 저는 회사에서 '노(NO)맨으로 통했다. 특히 인사문제만큼은 당시 청와대를 비롯해 어떤 외압이 들어와도 사주(社主)인 그분들을 설득해 원칙을 지키도록 했다. 또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노조관련 일화를 들려줘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IMF(국제통화기금) 당시 풍산노조는 1990년초 방산업체 불법파업으로 공권력 5000명이 투입되어 진압할 정도로 강성이었는데, 한해는 임단협 교섭기간중 노조측 요구가 지나쳐 교섭이 결렬되었다. 그날 저녁에 노조위원장과 4개 지부장이 갑자기 집을 방문하였다. 그 자리에서 중국집에서 시킨 음식에다 와인 2병을 나누면서 얘기를 나누었지만 노사관련 대화는 특별할 것도 없이 마치고 헤어졌다. 그런데 이튿날 노조측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전날 회사측이 제시한 최종안을 수용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회장이면 살림살이도 뭔가 다를 것이라 여겼는데, 가보니 자기네들 사는 것과 똑같더라"는 얘기를 했다 하더라.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에 힘쓰면서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결과였다.
(인사차 잠깐 들른 류을하 서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류 전회장에 대해 "정이 많고, 지혜롭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살아있는 선비정신이라고 거들었다)
― 창립회원이면서 영가회 제2대 회장을 맡아 초기 영가회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여러 방면으로 영가회와 안동 발전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영가회는 안동을 사랑하고 향토문화를 기리면서 안동인으로 긍지를 되살리는 우정의 모임으로 출발했다. 영가회 초창기에는 안동출신 웬만한 출향인사들이 서로 가입하려고 난리였다. 초창기 멤버 면면을 보더라도 류혁인(청와대 정무수석) 권중동(노동부장관) 권정달(민정당 사무총장) 등 당시 우리나라를 주름잡는 인물들이 부지기수였다. 안동인이라면 그런 분들의 얼굴만 알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을 때였으니까. 김해길 초대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맡으면서 부회장을 5명 보완했다. 그중 고인이 된 금창태 부회장(3대회장 역임)은 고향 사랑이 남다른 분이셨다. 중앙일간지(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부회장을 맡아달라는데 망설임 없이 응해주셨다.
류목기 제2대 영가회장
그런 분들과 함께 영가회 회장직은 4년간 맡았다. '영가문화상' 제정이라던지, 문화유적 탐방행사, 저명인사 초청 특강 등의 자리를 마련해 안동인의 단합과 고향 안동의 발전을 위한 지원에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였다. 영가회는 지금 출향인들의 단합과 친목이라는 본연의 활동을 잘하면서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더큰 발전 차원에서 경제연구소 설립 등 경제단체로서 기능도 강화하고 있지만 경제단체를 강조하다보면 친목모임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류목기 전회장은 영가회가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칭찬했다.
― 안동이 인구감소라는 위기를 딛고,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업·경제적 관점에서 안동 발전을 위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안동의 발전은 중앙정부의 예산만 갖고 와서 될 일이 아니다. 문화관광산업에 기반과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안동은 '유교문화'를 자산으로 아이콘이 어느 지역보다 충분하다. 권영세 안동시장 시절 안동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기업인이 본 안동발전 전략'을 내용으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90분 강의 시간내내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놀거리'를 만드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안동은 하회마을·도산서원 등 볼거리와 문화가 풍부한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간고등어·안동소주·안동한우 등 전통음식도 풍부하다. 이런 풍부한 문화관광 자원을 바탕으로 안동만이 가질수 있는 경제발전의 아이콘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 특별한 건강 비법이라도 있으신지요.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이른바 '소식다동(小食多動)'을 생활화하고 있다. 술은 일절 하지 않는다. 아무리 추운 겨울철에 내복을 입지 않고 지낸다. 젊을 때 등산을 즐겨했지만 지금은 완만한 산 중심으로 등산을 하고 하루 1시간 정도를 걷는데 투자하고 있다.
― 젊은 경영인이나 직장을 다니는 후배들에게 특별히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려 봐도 될까요.
△청렴결백이다. 유교의 정신이자 나의 생활철학이다. 이 말은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더욱 소중하고 필요한 가치라고 본다. 1980년대쯤 젊은 시절 강북삼성병원 총무과장으로 있을 당시 약품 납품가의 15%정도는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주는 것이 제약업계의 관행이었다. 그 당시 업계 관계자들이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가 내 사무실 탁자나 자리에 나도 모르게 현금 대신 구두·와이셔츠 티켓을 놓고 간 모양이었다. 내가 그걸 모아서 직원들에게 몽땅 나눠주었지. 그랬는데 수십년이 흘러간 최근에 어느 후배가 식사자리에서 "그때 류회장님이 나눠주신 구두티켓을 자기도 잘 사용했다"고 얘기해서 한참 웃었다. 월급이외에는 단돈 10원도 딴 주머니 차지 않았다. 회사를 경영하는 지인들이나 직장후배들에게 "사주를 위해 일하면 임원이 아니다. CEO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임원은 기업의 적이다"라는 말을 강조한다. 회사를 위한다면 직언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류회장의 다채로운 경력과 활동상, 그리고 삶의 철학을 짧은 지면으로는 요약할 수도 없다. 직장 생활, 언론사 기고, 삶의 철학 등을 담아 2015년에 펴낸 자서전 형식의 「무서잡록」(無序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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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8호 (2023년 가을호) 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