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9호(2024년 1월 22일 발행) 9면 〈안동문화 산책〉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퇴계격동시대(退溪激動時代)의 여성들'과 필자 '남승룡'은 지면대로 '퇴계가(退溪家)의 여성들'과 남승섭으로 바로잡았습니다.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남승섭
작금 일부 정치인들의 여성비하 발언이 마치 유교적 전통문화에 기인한 것으로 오도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 유가(儒家)인 퇴계가의 여성 특히, 퇴계의 어머니·아내·며느리·손녀의 행적과 퇴계의 여성관을 통해 유교적 전통문화가 결코 여성비하의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품격 높은 명문가를 이룩한 밑거름이었음을 방증코자 한다.
◇퇴계의 어머니 춘천박씨 진성이씨 세거지 온혜는 퇴계 조부 노송정(老松亭 李繼陽 1428~1488)이 서촌(녹전 사신리)의 영양김씨와 혼인 후 시거하였고, 퇴계 부(父)(李埴)는 의성김씨와 사이에 잠(潛)·하(河), 후부인 춘천박씨 사이에 의(漪)·해(瀣)·징(澄)·황(滉)을 두었다. 춘천박씨는 퇴계를 낳은지 일곱달만에 남편과 사별하자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행실을 삼가하라'는 엄한 자녀교육으로 모두 훌륭한 인재로 키웠다. 장자 潛의 딸은 송암(松巖 權好文)의 어머니며, 둘째 河는 노송정 종파를 이었고, 본인 소생 셋째아들 漪는 외손봉사(外孫奉祀)의 효행을, 넷째 瀣는 관찰사.대사헌 등 과환(科宦)으로, 다섯째 澄은 명망 높은 효자로, 여섯째 滉은 과환과 학덕으로 후세의 영원한 사표(師表)가 되었다.
◇퇴계의 아내 권씨부인 퇴계는 21살에 혼인한 김해허씨와 5년만에 사별 후 1530년 풍천 가일 사락정(四樂亭 權碩)의 딸 안동권씨를 후부인으로 맞았다. 권씨부인은 연산군 생모 폐비윤씨 사사(賜死)때 사약을 가지고 간 조부(花山 權柱)가 화를 입었고, 아버지는 귀양갔으며, 숙부(己卯名賢 權磌)도 비참하게 죽었고, 숙모는 관비로 끌려가는 참극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도포를 빨간 헝겊으로 기웠느니,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을 집어 먹었느니' 하는 권씨부인 관련 일화는 퇴계의 결혼생활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퇴계는 권씨부인을 한결같이 감싸며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퇴계는 부인을 소박하던 제자 천산재(天山齋 李咸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직접 목격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반성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했다는 일화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진다.
◇퇴계의 며느리 퇴계는 맏며느리 봉화금씨(琴梓 女)를 맞을 때 上客으로 갔다가 사돈가에서 미천한 가문이라며 홀대를 받았다고 한다. 이 일로 양 가문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라며 큰 불화로 이어질 상황에 이르렀으나 퇴계는 "며느리를 맞이하는 터인데 그런 하찮은 일로 말썽을 일으키면 새 며느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되니 물러들 가거라"하면서 사돈댁에서 일을 일체 불문에 부치고 며느리를 극진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에 봉화금씨는 시아버님의 넓은 도량에 크게 감동하여 한평생 높이 받들어 모셨으며 훗날 임종 때 "시아버님 생전에 내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죽어서도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려 하니 아버님 묘소 아래 가까운 곳에 묻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겨 지금도 봉화금씨 묘는 퇴계선생 묘소 아래에 있다. 이처럼 사돈댁의 괄시를 널리 포용하고 지극히 아껴준 시아버지의 인품에 감명받은 봉화금씨는 효행과 적덕으로 명문 반가의 내조를 다하였다. 그리고 퇴계의 둘째아들 채(寀)는 정혼만 해놓고 21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홀로된 며느리가 남편을 잊지 못해 하는 광경을 우연히 엿보게 된 퇴계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데려가게 하여 당시 예법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재혼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퇴계의 손녀 퇴계의 손녀는 임하 내앞 의성김씨 운천(雲川 金涌)의 부인으로 친정어머니 봉화금씨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여섯아들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 세인이 선망하는 반가를 이루었으며, 후세에 전해지는 가훈이 '窮不失義 達不離道(궁불실의 달불이도·어려워도 의를 잃지 말고 이뤘다고 정도를 떠나지 말라)'인데 이는 진성이씨의 엄한 자녀훈육 내조와 어우러져 걸출한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진 것은 아닐는지.
이처럼 유교적 전통문화의 한가운데서 '퇴계가의 여성들'이 일구어온 엄한 자녀훈육, 효행실천, 가풍계승, 적덕내조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도 대표적 명문가로 자리매김하는 큰 역할을 했으며 특히, 유학자 퇴계의 사려 깊은 여성관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 남승섭 /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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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문화 산책 〈5〉 청백리 보백당 (8-8호)
출처: 《영가회보》 8-9호 (2024년 겨울호) 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