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9호(2024년 1월 22일 발행) 11면에 실린 글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신회/김기철사담(金鬼歎史)]'과 필자 '류영철'은 지면대로 〈신(新) 귀거래사(歸去來辭)〈상〉〉과 이종섭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로 바로잡았습니다.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 이종섭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 뿐이오 가는 이 없네
전원에 잡초 우거지는데 아니 가고 어쩔꼬
초당(草堂)에 청풍명월(淸風明月)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효빈가(效嚬歌)」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본받아 지었다고 한다.
사화(士禍)로 선비들이 고초를 겪던 1542년 농암은 76세에 중종과 관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 안동 예안으로 귀향했다. 조선조 유일의 정계 은퇴식이었다. 이날 전별연은 궁궐에서 한강까지 동료와 벗들의 전별 행차가 이어졌고 이를 본 도성 사람들이 담장처럼 둘러서서 "이런 일은 고금에 없는 성사"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귀향은 상당히 어렵다.
영남을 관통하는 낙동강 1300리,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내 고향 안동'.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 "안동입니다"라고 하면, 고맙게도 "아, 좋은 곳이네요" 라고 반겨주어 왠지 으쓱해지곤 했다. 수백년 전부터 살아오신 선조의 피가 몸에 흘러서인지 이유없이 고향이 좋아 시간만 나면 가고 싶은 곳이 내 고향 안동이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잘 알려진 안동은 이미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천도됐고, 면적도 전국의 지자체 중에서 가장 넓다. 바라건데 안동시 인구가 지금보다 10배인 150만명 정도로 불어나고, 교육·문화관광과 첨단산업 중심의 광역시로 도약해 기업투자가 줄을 잇기를 기원해 본다.
안동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의 모습이다. 이 말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삼정승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로, 송나라 시인 대복고(戴復古)의 「조대(釣臺)」에 나오는 구절이다.
옛 선인들은 안동을 '삼공'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노래했다. '푸른 향초 잎사귀' '붉은 여뀌꽃' '흰 해오라기'와 어우러진 낙동강에 배를 띄워 '안개 속'을 선유(船遊)하는 한편 '달빛 아래'로 돌아오거나 '내 마음 가는 곳 따라 기심(機心)을 잊었노라'며 자연의 일부가 된 자신을 드러내며 '물결 따라 정처없이 흘러가노라'고 읊조렸다고 전해진다.
서울살이 수십 년… 아무 생각 없이 집 근처의 남한산성을 오르며 유유자적 지내다가 수년전 우연한 기회에 한 스님으로 부터 '안동에 가서 움막 하나 짓고 지냅시다'는 조언을 따라 부모님이 경작하다 잡초만 우거진 곳에서 귀거래(歸去來)를 흉내내며 지내던 중 그해 늦가을 고운 낙엽과 함께 떠나 버린 스님의 빈자리는 전부 내 몫이 됐다.
애당초 깊은 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머위·두릅·고추·호박 등의 채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 고향 지키고 사시는 어르신들과 농사를 짓지 않는 이웃에게 나눠 드렸더니 "아들보다 낫다" "부처가 왔다" "시의원 출마 준비하느냐"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채소와 곡식이 싹트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저녁이면 달과 총총한 별, 반딧불이와 풀벌레 소리,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래를 듣고 지내다 보면 어느 새 '인간 세상 다 잊고 날 가는 줄 모르는 삼매경'이 되곤 한다.
정이 넘치는 이웃분들의 도움으로 먹거리가 지천으로 깔리고 깨끗한 물 철철 넘치며 땔감과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비싼 비용을 들여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멋진 힐링'을 하고 있으니 내가 사는 곳이 '삼공불환차강산'이다.
— 이종섭 /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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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新) 귀거래사 〈하〉 (8-10호)
출처: 《영가회보》 8-9호 (2024년 겨울호) 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