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8호(2023년 10월 15일 발행) 10면 〈안동문화 산책〉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남승룡'으로 적었던 필자는 지면대로 남승섭으로 바로잡았습니다. 현판 사진에는 지면에 설명이 없어 새긴 글을 달았습니다. 연도 표기 '1431년(세종12년)'은 지면대로 두었습니다.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남승섭
철학자 슈펭글러(Spengler)는「서양의 몰락」에서 "형이하학(形而下學)이 형이상학(形而上學)을 죽이며 공간과 물질이 시간과 정신을 죽이는 혼돈의 세계를 구하는 길은 오직 동양사상에 있다"했다. 또 안동출신 명곡(明谷 柳正基)선생은「빛은 동방으로부터!(Ex Oriente Lux!)」에서 "민주국가에서 부정부패의 고질을 고칠 방법이 없다. 부정부패는 인간의 심리적 문제이지 제도적 문제가 아니므로 민주주의로는 아무리 촘촘한 법망을 만들어도 심성을 바로잡지 않으면 부정부패를 근절하지 못한다"하였다. 이에 작금 위정자들의 '50억클럽', '돈봉투 사건', '코인(가상화폐)사건' 등을 목도하면서 청백리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1431~1517)의 행적을 이번 안동문화 산책코스로 삼는다.
'寶白堂' 현판
보백당(寶白堂)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데 인근 만휴정(晩休亭)과 함께 안동의 대표 유적지로 인기드라마 촬영장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보백당은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큰 공을 세운 고창(古昌,안동)성주 김선평(金宣平)의 10세손으로 1431년(세종12년) 풍산 소산리에서 태어나 50세(1480년)에 문과급제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면서 청백리의 길을 걷게 된다. 이에 앞서 1462년 성주향교 교수로 재임시 세조(世祖)의 총애를 받던 국사(國師)인 장조카 학조(學祖)가 성주에 들렀을 때 "너는 왕은(王恩)만 믿고 교만하게 노숙(老叔)을 찾지 않고 도리어 숙부가 너를 찾아보라 하느냐"며 매로 크게 꾸짖었다는 일화에서 보백당의 강직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성품과 청렴성은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보백당의 자(字) '취사(取斯)'는 노(魯)나라 청백리로 존경받던 복자천(宓子賤)을 칭찬하는 논어 공야장에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러한 덕을 얻었겠냐(魯無君子 斯焉取斯)'에서 취하였다. 그리고 17세에 맞은 배위 이천서씨의 타계로 24세에 영양남씨 의령파 쌍청헌 남상치(雙淸軒 南尙致)의 둘째 딸을 배위로 맞게 되는데 일찍이 남상치는 청백리로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단종폐위) 때 길안 묵계촌으로 낙향하여 쌍청헌을 짓고 은거하였다. 보백당은 만년(晩年)인 1501년에 장인의 숨결이 서려 있는 그곳에 만휴정(晩休亭 경북도문화재 제173호)이란 새 편액을 걸고 청백정신을 쌓아갔다. 마루 안쪽 현판 쌍청헌(雙淸軒)은 만휴정 건립 전에 쌍청헌이 있었다는 단서이며, 보백당의 청백정신은 이름과 장인 쌍청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그의 청백정신은 자녀들에게 이어져 맏사위인 함양박씨 박눌(朴訥)의 다섯아들(巨鱗,亨鱗,洪鱗,鵬鱗,從鱗) 모두가 문과급제로 현달하였고, 둘째사위 풍산류씨 류자온(柳子溫)의 네아들(公綽,公權,公奭,公季)도 모두 현달하였다. 특히, 류자온의 증손자 서애(西厓 류성룡)는 영의정으로 임란 극복의 위업을 남기고도 전란 수습과정에서 북인의 탄핵을 받아 낙향했으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청렴성이 아니었다면 훗날을 기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보백당의 청백정신 유계(遺誡)는 만휴정의 현판에 새겨 전해지는데 그 하나는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즉,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이며, 또 하나는 "持身謹愼 待人忠厚(지신근신 대인충후)" 즉, '내 몸가짐은 신중히 삼가고, 남은 충심으로 후히 대하라'이다. 이는 81세 때인 1511년 내·외손들의 헌수(獻壽)시에 현달한 자손들이 범할 수 있는 경박한 행동을 신칙(申飭)하며 남긴 유훈이다.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현판
'持身謹愼 待人忠厚' 현판
예로부터 관료의 청렴성을 특히 경계했는데 중국 후한 때 양진(楊震)이 왕밀(王密)을 요직에 앉히자 뇌물을 건네며 '이 어두운 밤에 아는 이가 없습니다.'하니 양진이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느냐?(天知神知子知我知 何得無知)'며 사자지비(四者之秘)라 하였고, 다산(茶山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뇌물을 수수함에 누군들 비밀로 하지 않겠는가? 한밤중의 소행도 아침이면 온 세상이 다 안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며 뇌물 수수를 경계하였다.
안동은 이처럼 엄격한 도덕성과 청렴성을 선비정신으로 승화시켜왔는데, 그중에서도 동쪽지역(길안·임하·임동)의 안동김씨 보백당(寶白堂), 의성김씨 청계(靑溪), 전주류씨 기봉(岐峯) 가문은 청백정신에 바탕한 대표적인 명문가라 하겠다. 그러한 청렴 명문가의 후예들이 드나드는 동쪽 관문인 안동대학교 앞 동인문(東仁門) 현판이 안타깝게도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사법처벌을 받은 자의 글씨이니 이는 안동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필자는 東仁門 현판의 즉각 교체를 제안하면서, 물질만능 풍조를 순화하는 안동문화 산책코스로 청백리 보백당의 뒤안길을 추천해 본다.
— 남승섭 / 前 한국정신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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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8호 (2023년 가을호) 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