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10호(2024년 4월 17일 발행) 11면 글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의 '[신회/김기철사담]'과 필자 '류영철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지면대로 〈신(新) 귀거래사〈하〉〉와 이종섭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로 바로잡았습니다.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 이종섭
1988년 올림픽 축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한편에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 놓고 낳다 거지꼴 못 면한다'는 산아제한 구호가 난무한 때가 있었다. 셋째부터는 아예 의료보험 적용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아부지는 땅 몇 뙈기로 7남매를 번듯이 키웠는데, 그깟 아 셋 못 키우겠느냐'는 배짱으로 '아들·딸 둘 낳았으면 됐지 뭘 더 낳느냐'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식구 구슬리느라 '설거지 할 것' '화장실 청소할 것' 등 12조항 요구 각서에 멋지게 사인해 주고 그해 셋째로 아들을 얻었다. 아이 셋 됐다고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은 데다 애들이 사춘기에 들자 '각방' 요구로 방 네칸 아파트 살 형편이 안 되던 때엔 "능력도 없는 사람이 애만 많이 낳았다"며 온갖 고초와 구박을 받기도 했다.
한방에 아파트 10평 정도는 넓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된 묘수'가 귀거래(歸去來)에 있는 줄은 늦게 알았다. 창고와 베란다에 있던 버리기는 아깝고 쓰지 않던 물건 한 트럭 싣고 귀거래 흉내 내니 절로 집이 넓어진 데다 애들도 짝을 찾아 떠나니 텅 빈 집이 새롭게 느껴진다.
74세의 농암은 은퇴 2년 전인 1540년, 44세 온계 이해(李瀣)와 40세 퇴계 이황(李滉) 형제에게 '분어행(盆魚行)'이라는 시를 지어주며 답을 달라했다.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자는 뜻을 시로 전달한 것이다. 권모술수와 음모가 횡행하고 사화로 한 치 앞도 못보는 당시, 이 시는 관료들을 어항 속의 물고기에 비유한 특이한 형식의 장문의 시다. 정국 동향의 구조적 비극성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진단한 셈이다. 그 일부를 보자
내가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吾觀世上人)
벼슬살이의 명리에 빠져서(宦海沈名利)
줄을 따라 떼를 지어 다니며(隨行而逐隊)
은택 입기를 바라고 있지(添丐恩光被)
봉지 속에 청운의 꿈 두고서(青雲鳳池裏)
의기양양 그 뜻을 얻었지만(揚揚方得意)
하루저녁에 풍파가 일어나면(風波一夕起)
장차 제 몸 둘 곳이 없다네(將身無處置)
구차하게 살아가는 목숨이야(姑息活軀命)
사람과 만물이 다름이 없네(人與物無異)
농암은 이 시에서 '어항 속 물고기들이 자유를 즐기지만, 그 장소를 얻은 것은 아니다(盆中遊自恣 然非得其所)'고 했다.
퇴계는 화답(和答) 시에 '깊은 훈계는 분어행(盆魚行)에 있으니, 지극한 가르침 새겨 명념하리다(深戒在盆魚 至誨當銘記)'고 답했다. 그리고 "저도 물러나겠습니다"고 했다.
34세 늦은 나이에 문과 급제한 퇴계 이황에게는 예상 밖의 권고이고, 예상 밖의 답변이었다. 퇴계는 농암이 은퇴한 다음 해인 1543년, 첫 은퇴를 감행했고 1546년 또 물러났다. 이후 진퇴를 거듭했다고 한다. 부르면 올라갔지만 '물러남'에 방점을 둔 처신이었다고 해석된다.
안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문화관광 유산의 보고(寶庫)로 평가받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 하회마을. 청량산 기슭의 애일당(愛日堂)과 고산정 그리고 만휴정, 임청각, 한국국학진흥원 등 역사적인 배경이 풍부하고 낙동강 상류 지역으로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江)의 도시 안동. 이를 배경으로 조성된 월영교, 선비순례길(선상순례길)을 지나 학가산온천과 도산온천에서 심신 달래며 내 고향을 마음속에 품어본다. 그윽한 향취에 감칠 맛이 특유한 안동소주를 음미하고 달고 매콤한 안동식혜 한그릇을 마시며 안동을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 이종섭 / 목우촌펫 부사장·철학박사
함께 보기
출처: 《영가회보》 8-10호 (2024년 봄호) 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