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6호(2023년 4월 15일 발행) 11면의 작품 소개와 기고를 지면 순서대로 옮겼습니다.
'역동하는 봄'을 맞으세요
서양화가 강의국 회원이 3월15~2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라메르에서 개최한 인물화전에 출품된 작품.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운동선수의 모습을 담았다. 한국현대미술작가연합회 장상을 수상한 작품
백수의 놀이터 텃밭 10평
前 농협지점장 신승문
오늘이 24절기로 경칩. 올해의 텃밭농사 준비도 하고 겨우내 잠들었던 정구지밭에 퇴비를 주기 위해 농협에 가서 퇴비를 사 왔다.
농사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방학때에만 부모님 농사짓는 것 조금 도와드린 것밖에 모르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 있어 퇴직 후 백수가 되어 바로 텃밭농사를 시작하여 올해까지 십 수년 텃밭을 해오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몇 자 적어본다.
남들은 텃밭을 다섯 평 정도 하지만 나는 열 평 정도로 한다. 텃밭 땅주인이 열 평이라고 분양하지만 실은 여덟 평 정도다. 텃밭을 해보면 그것도 작은 면적이 아니다. 면적이 너무 작으면 심을 게 적어서 나누어 먹을 게 없고, 그보다 넓으면 재미로 짓는 텃밭농사가 텃밭에 얽매여서 중노동이 된다. 또 나는 내가 키우기 쉬운 작물을 선택하지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작물은 키우기도 어렵고 그 결과가 나를 실망시킨다. 경제적으로는 임차료, 퇴비구입, 종묘대, 노동력과 수확물의 가치를 따지면 얼마나 이익인지는 몰라도 텃밭농사가 정신적으로는 많은 이익을 준다고 본다.
텃밭농사를 하면서 배우거나 느끼는 것들이 여러 가지다.
첫째가 농사는 자연에 순응하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때를 놓쳐서는 안되는게 농사다. 심을 때 심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야 자라고, 수확할 때가 되어야 수확한다. 농작물은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때를 맞추어 농사지으라고 농협에서 매년 농가에 농사월력을 나누어 주는 것도 그 이유이고, 옛 조상들이 24절기에 맞춰서 농사를 짓도록 농가월령가를 만들어서 사용했는가 보다. 농사는 땅과 자연을 농부가 잘 이용해야 그 결과가 좋게 나온다.
둘째가 텃밭농사는 기르는 재미다. 채소를 심어 놓고 먹을 때까지 자라는 과정을 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과 같이 신기하다. 물론 심을 때 거름도 주고, 자라는 동안 물도 주어야 하고 벌레도 잡아야 한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벌레도 참 많이 온다. 달팽이는 상추·배추를 왜 그리 좋아하는지. 또 잡초는 왜 그리 많이 나는지. 뽑고 또 뽑아도 나는 게 잡초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농작물에 꿀벌은 전혀 해를 주지 않는 유익한 벌레이지만 나비는 채소에는 유익한 점 보다는 해를 더 많이 주는 것 같다. 나는 텃밭농사에 퇴비를 많이 쓴다. 사람도 튼튼한 사람이 병이 적게 오듯이 작물도 튼튼하게 키우면 병이 적게 온다. 퇴비를 많이 준 채소는 화학비료를 준 채소보다 쓴맛이 없고 달다고 한다. 작물은 주인이 관심을 주는 만큼 주인에게 되돌려준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옛 어른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셋째가 나누어 먹는 재미다. 내가 직접 땀 흘리고 정성들여 기른 채소를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이 받아서 "잘 먹겠다" "잘 먹었다"고 했을 때가 마음이 즐겁다.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항상 더 싱싱하고, 더 좋은 것을 주고 나는 그 나머지를 먹는다. 또 그 집까지 가져다주면 받으면서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의 기쁨을 찾는다. 어릴적에 우리 어머님이 어려운 우리 형편에도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작은 것으로 이웃간이나 친지들과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나를 기쁘게 한다.
넷째가 먹는 입이 즐겁다. 싱싱한 채소를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게 나를 기쁘게 한다. 사실 시중에 파는 채소는 무농약으로 기른다지만 믿지 못하는 게 실상이다. 여름에는 상추류와 오이·풋고추 등을 심고, 가을에는 김장용으로 배추와 무만 심는다. 그 배추로 김장을 담아 이웃과 나누고, 우리 두 아들들에게 보냈을 때 손자들이 할머니 김치가 가장 맛있다고 할 때가 즐거웠다. 또 배추전이나 무전을 부쳐 먹을 때 그 맛은 일품이다.
다섯째가 부수적으로 나의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남의 땅을 빌려서 하는 농사이지만 거리가 멀면 자주 못 가기 때문에 걸어서 20분 내외의 가까운 거리에 밭을 빌린다. 텃밭을 오가며 걷는 것도 운동이 되고, 밭에서 삽질·괭이질 등의 작업이 상당한 운동이 되어 체력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심심하면 일부러 운동삼아 텃밭에 다녀오기도 한다.
내가 농사짓는 텃밭에서 이웃들은 나를 '농사 잘 짓는 아저씨'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오이·배추·무·정구지를 제일 잘 키운다고들 한다. 그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렇게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텃밭농사도 LH의 택지개발로 텃밭이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 도시개발이 나에게 그만 쉬라고 주는 선물인가.
— 신승문 / 前 농협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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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보》 8-6호 (2023년 봄호) 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