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 40년사》 413~414쪽에 실린 김희곤 회원의 기고문입니다. 지면을 옮겼습니다.

안동지방의 독립운동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나름대로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첫째 — 한국독립운동사의 발상지

한국독립운동사의 서막을 장식한 것이 바로 의병항쟁이고, 그것은 갑오의병으로 나타났다. 1894년 갑오의병의 첫걸음을 안동에서 내디뎠다. 비록 공주 유생이었던 서상철에 의해 준비되었지만, 안동 유림들은 대의명분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출발지로서의 역사성을 가진다.

둘째 — 혁신유림이 중심에 있었다

의병항쟁 이후 전개된 안동인들의 각종 항일 투쟁에는 혁신유림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의병항쟁이 실패한 이후 대부분의 유림들이 처사를 자처하고 은둔생활을 하였지만, 안동 유림들은 자기 반성과 자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선택하였다. 이렇게 등장한 혁신유림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진보적이고 통일 지향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셋째 —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

시군 단위로 보아 대개 30여 명을 배출하였는데, 안동의 경우는 2004년 현재 265명 정도나 된다. 이 수치는 시·군 단위가 아니라 도 단위의 것이다. 그런데 일찍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본적을 옮긴 경우는 다른 지역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300명을 웃돌 것이라고 추정된다.

넷째 — 가장 많은 순국 자정자

안동인들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순국 자정자를 배출할 만큼 절개와 의리를 지니고 있었다. 준식민지 상태와 국권 상실이라는 위기 속에서 약 6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 중 10명이 안동인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국가와 임금에 대한 충성을 몸소 실천하였고, 이후 항일투쟁의 정신적 좌표가 되었다.

다섯째 — 사회주의운동의 중심에도 안동인

1920~30년대 사회주의운동에도 어김없이 안동인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특히 이들은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다. 소작인회를 지주가 중심이 되어 투쟁한 사례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여섯째 — 지역과 시기를 가리지 않은 참여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각종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바로 안동인들이다. 사상적인 갈등, 그리고 나이를 따지지 않고 오직 독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어느 분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항일투쟁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하였고, 뛰어난 지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곱째 — 퇴계학맥과 혼반이 만든 연결망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는 퇴계학맥이라는 씨줄과 통혼을 통한 혼반이라는 날줄로 촘촘히 얽힌 그물과 같은 연결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조직력이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운동을 밀고 나가는 에너지원이 된 것이다. 그 바탕 위에 근대화를 지향한 점은 한결 돋보이고, 그래서 오늘까지도 생명력을 갖고 있다.

여덟째 — 지식인이자 지배층의 책무

안동인들이 펼친 독립운동은 지식인이자 지배층이 역사적인 책무를 지고 나간 전형적인 모범에 속한다.

종가가 훼손되는 고통 속에서도 진행된 의병,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떠난 만주지역 독립군 기지 건설과 투쟁, 소작인들을 위해 지주들이 앞장선 양반 종가 출신 청년들의 활동 등은 하나같이 가지고 배운 자가 역사적인 의무를 다하려고 힘을 쏟은 특성을 보여준다.

요즈음 널리 이야기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를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곳이 안동이요, 안동문화권의 특징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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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 40년사》 413~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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