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김해길(金海吉) 회장 — 1977~1998

창립총회에서 선출돼 21년을 이끌다

2026年 05月 11日글 · 편집실

편집실 안내 —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제1대 김해길 회장 편의 첫 자리(27~29쪽)를 정리했습니다. 지면에 적힌 것만 옮겼습니다.

취임

"초대 김해길회장은 1977년 3월 26일 창립총회(류혁인, 이상두, 권웅열, 송보열, 김해길 등 61명 참석)에서 선출되어 취임하였다."

  • 초창기 사무실은 덕수빌딩(장원석 회원 소유)을 무료로 제공받아 썼습니다.
  • 회비 없이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했습니다.
  • 처음에는 영가회와 상록회의 합성어인 영가상록회(永嘉常綠會) 라 불렀고, 뒤에 영가회(永嘉會) 로 고쳤습니다.

설립 취지와 회원

  • 초창기 설립 취지는 친목과 화합이었습니다.
  • 입회 회원의 자격과 조건을 엄격히 제한해 회원 수가 급격히 늘지 않았고, 회원 각자의 긍지도 대단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 이들

"우리고향 안동에서 보따리 들고 천리타향 서울로 올라와서 삶의 터전을 겨우 잡은 재경 안동인들의 친목과 유대를 위해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면에 오른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류혁인 · 이상두 · 석기홍 · 손병도 · 김명년 · 김지학 · 장원석 · 김해길 · 권웅렬 · 김시효 · 권화섭 · 권태수 · 이용태 · 윤성근 · 이준승 · 김계현 · 류동주 · 장상섭 · 송보열 · 권태완 · 강표원 · 변동신 · 권오주 · 권원기 · 천봉석

이들이 용수산 · 남강 등 음식점에 모여 4~5차례 모임을 갖고 영가상록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준비 모임에서 정한 것

  • 회칙 초안은 이상두 회원이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 회원 추천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각자 한두 사람을 데리고 참석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 추천할 사람은 이 모임을 정치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이용할 우려가 있는 사람은 배제하고, 목에 힘주는 인사는 절대 불가로 했습니다. 안동인의 특수한 기질 때문에 전에도 여러 차례 모임이 이어지지 못하고 해체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 완전히 결성될 때까지는 추천된 사람을 전원의 합의로 입회시키기로 했습니다.
  • 회장은 안동농림 출신 김해길, 실무를 맡을 총무는 안동중고등 출신으로 창립 준비에 참여한 권화섭을 선임했습니다.

창립총회 — 1977.3.26

항목 내용
일시 1977년 3월 26일 18:00
장소 종로구 견지동 덕수빌딩 지하 1층 연회장
참석 61명

지면에는 참석자 61명의 이름이 한자로 실려 있습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글자가 깨져 이 글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회순과 의결

  • 회의 진행 — 류동주
  • 창립 취지 및 경과 보고
  • 의결사항 — 회칙 상정, 원안대로 통과
  • 임원 선출 — 준비 모임에서 결정된 사항을 상정해 전부 통과
  • 기타 — 앞으로 정치인은 회장에서 배제하고, 신입회원은 기존회원 3인 이상의 추천으로 회장단에서 심의 후 결정
  • 회비 — 초창기에는 당분간 회비 없이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
  • 사무실 — 당분간 장원석 사장 소유 덕수빌딩 사무실을 무료로 이용
  • 회장 인사 — 임원진 경례
  • 만세삼창 — 김시효
  • 폐회 선언 — 김지학

"이렇게 영가상록회가 앞으로 펼쳐질 희망찬 미래 비전을 꿈꾸면서 시종 웃음으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탄생되었다."

21년

  • 1977년 3월 26일 창립부터 1998년 10월 23일까지 연임했습니다.
  • 후임자를 찾지 못해 오랜 진통 끝에, 1998년 10월 안동사범학교 출신 류목기(㈜풍산 총괄부회장)를 후임으로 추천했습니다.

이 기간에 영가문화 제1집(1982)과 제2집(1998)이 나왔고, 회칙 1차 개정(1983)과 2차 개정(1998)이 있었습니다.

다른 회원이 남긴 김해길 회장

김원 회원은 20년 장기 재임의 비결을 물었을 때의 답을 이렇게 옮겼습니다(346쪽).

"원이 봐라, 나처럼 무색 무취한 사람 어디있나. 욕심이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부려먹기 좋아 이 자리에 앉히는 게 아니겠어?"

류종묵 5대 회장은 김해길 회장을 "전형적인 안동 유림(儒林)의 표본" 이라 적었습니다(362쪽 이하).

함께 보기

출처: 《영가회 40년사》 27~29쪽 · 346쪽 · 362쪽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