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8호(2023년 10월 15일 발행) 9면 〈영가수필〉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김창준'으로 적었던 필자는 지면대로 김원 서울시립대 부총장 역임·현 안동시장학재단 공동이사장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서울시립대 부총장 역임, 현 안동시장학재단 공동이사장 김 원
영화 '오펜하이머'가 대박을 쳤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길어지자 미국이 극비밀리에 '맨해튼프로젝트'를 추진해 일본을 항복시킨 원폭의 창시자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다. 그는 그것으로 좋게 말해서 한때 미국의 승전영웅이 되었지만 어이없게도 토사구팽(兔死拘烹) 당하는 역전 드라마에 사람들이 빨려들어 간다. 이 영화가 나오자 오펜하이머에 대한 온갖 뒷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묻어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신화에 보면 프로메테우스가 불(火)을 가져온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빼앗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맨해튼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에게 원자력 에너지(火)라는 엄청난 기회를 주었지만 죽음의 재앙을 불러온 죄과로 독수리에게 간을 빼앗긴 꼴이 되고 만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아이러니의 극치를, 모순의 양면성을 본다.
나는 그런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보다 그가 프린스턴대학 연구실에서 흑판에 새까맣게 적힌 수식을 뒤로하고 파이프를 들고 있는 장면에 꽂혔다. 수식이 잘 풀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뭔가가 그를 에워싸고 가슴을 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 길이 없지만, 파이프는 그에게 생각의 여백을 만들어 준 것만은 틀림없다. W. M 새커리도 "파이프는 예지를 끌어내며, 명상적이고, 생각이 깊고 허식 없는 청담을 조성한다"고 했으니 한 템포 여유를 가져다주는 파이프의 상징성이 크다.
처칠이 시가를 물고 있는 장면이나,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면서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진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오펜하이머의 그 파이프 장면은 공교롭게도 반세기나 더 오래된 내 젊었을 때의 아련했던 향수를 불러온다. 1960년 중반 내가 미국유학 할 때 '로랜스 맨'이라는 교수가 첫 강의시간에 파이프를 물고 들어왔다. 머리도 터벅한 데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입고 온 옷은 어디 중고가게에서나 있을 법한 모양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교적인 관념에서 스승의 복장은 제자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자란 나에겐 과히 문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교수가 파이프를 물고 들어오는 미국 대학문화가 그렇게 생경스럽기는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오히려 그 모습에서 풍기는 멋이라 할까, 여유로운 모습이 좋아 보였다. 물론 파이프 연기에서 흘러나 오는 향기도 감미롭고 싫지가 않았다. 그 향이 뇌를 자극하는 듯했다. 그 교수는 독일 후예로 덩치도 적당해 파이프를 물고 선 그의 모습이 어울렸다. 나는 거기에 끌려 그를 석사학위 지도교수로 모셨다. 로랜스 맨은 그 후 모교인 하버드대학 도시계획학과 학과장으로 갔고 나는 박사학위를 하기 위해 컬럼비아대학으로 옮겼다. 그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한때 문화충격으로 속절없이 허우적대기는 했지만, 그것이 나를 미국청년으로 동화시켜 놓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갓 30대 초반이였던 나는 자유분방한 미국 대학문화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 긴장을 풀고 나니, 하나에서 열까지가 모두 신기했다. 바짝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빠르게 미국 캠퍼스 문화에 쏠려갔다.
박정희 군사문화에 길들여 짧게 깍고 간 그때의 내 머리는 그냥 길러져 이발이 필요 없어 돈이 안 들어 좋았고, 아랫도리가 헐렁한 나팔 청바지를 줄을 세워 입고 간 신사복과 바꾸어 입는 데는 누워 떡 먹기였다. 미국 유학 간다고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맞추어 신고 간 밤색 수제구두는 작업화로 둔갑하고 보니 구두 광낸다고 들고 간 구두약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점차 미국 젊은이의 히피문화에 발을 들여 놓았다. 물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파이프였다.
애연가가 아닌 나에게 파이프는 신기루였다. 아리랑 담배를 피워보았지만, 구역질이 나와 체질상 맞질 않았는데 파이프는 달랐다. 내 지도교수의 환상적인 첫인상을 떠 올리면서 혼자 멋을 부려보았다.
학교 가면서 오면서 맨해튼 42가 타임스퀘어에 있는 파이프 담배 가게에 단골로 들러 각종 기구를 겁 없이 사들였다. 파이프에도 여러 형태가 있고 재질도 달라, 값이 천차만별이다. 담배 역시 향에 따라 선택이 많고 값 차이도 있다. 담배보관함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니코틴 청소도구 역시 만만찮다. 학생 체면에 파이프는 이래저래 시간과 돈을 제법 잡아먹는 기호품이다. 이 때문에 파이프 수집광들이 많았고 어쩌면 그런 구차한 절차와 투자가 파이프애연가를 고급스럽게 차별화했는지도 모른다.
귀국해서도 한때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솔직히 폼만 재는 사이비 '뻐끔'담배로 파이프를 물고 다녔을 뿐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연구실에 두고 간 파이프에 담배를 넣고 불을 붙인 후 커피를 한잔 앞에 두고 파이프 물뿌리를 문다. 그리고 파이프를 코등에 대고 이리저리 문지르면 코등기름이 고루 묻어나 윤기가 나서 파이프가 더 반들반들해 멋져 보인다. 그쯤 되어 파이프 연기가 문틈을 타고 나가면 그 향기가 복도로 퍼져간다. 동료교수는 복도에 들어서 파이프 향기를 맡으면 내가 이미 출근해 연구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농을 하곤 한다.
이유식의 수필「파이프씨의 변」에 보면 그 역시 파이프 애용가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파이프를 물고 있으면 무엇보다도 중량감 있고, 점잖아 보이며, 마땅한 일거리가 없을 때 파이프 니코틴 청소를 하면서 생각을 다듬는 등 여러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 사실 그 때문인지 파이프는 한때 지식인들에게는 사랑을 독차지했을 정도였다. 글을 쓰는 작가가 생각을 정리할 때 파이프를 물고 보면 상상력이 솟아 올라 글이 이어지고, 강의하는 교수가 적절한 논리를 찾지 못할 때 파이프를 들고 서성거리면 새로운 길로 이어질 수가 있다. 파이프는 사색과 몰입의 상징이기도 하다.
어느 해인가 내가 국제회의를 주관하게 되어 파이프의 환상을 심어준 로랜스 맨 교수를 서울에 초청했다. 왕복여비와 체재비에 포디움을 넉넉하게 주면서 그에게 한 세션을 맡겼다. 회의가 끝나자 그를 집에 초청하여 우리 부부와 함께 오찬을 했다. 나는 그에게 파이프 담배를 아직도 갖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담배가 건강을 해친다"는 아내의 극성에 못 이겨 파이프와 일체 도구를 버렸다고 실토한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강 지상주의에 밀려 도매금으로 넘어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내 젊었을 때 환상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찌하랴' 안타까울 뿐이다. 멋과 낭만이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세월이 흐르면서 멋과 여유로움이 실리적 공리주의에 묻혀 살아지고, 행복했던 사람들은 점차 메마른 현실주자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지만 파이프를 물고 있던 맥아더 장군이 아마 지금쯤 생존했다면 파이프를 버리고 현실에 안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창가에 기대어 마지막 파이프 연기를
어둠 속에 희뿌옇게 뿜어내면
육체는 감미로운 고통에 차고
영혼은 만족의 영역에서 왕관을 쓴다
스티븐슨의 시「도보여행」서처럼 파이프의 낭만과 멋, 그리고 향수가 사라지고 없는 이제, 까마득히 잊어버릴 뻔했던 반세기나 더 오랜 내 젊은 날 파이프의 추억을 다시 불러준 오펜하이머 박사에게만은 다시 없는 나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 김원 / 서울시립대 부총장 역임, 현 안동시장학재단 공동이사장
출처: 《영가회보》 8-8호 (2023년 가을호) 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