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3호(2022년 7월 15일 발행) 11면 기고 〈上〉편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본문의 '길상지' 한자는 표제 표기(吉祥地)로 맞췄습니다.
권기성 — 세명대 석좌교수, 전 공정거래위원회 국장
누구나 저마다 태어나고 생장한 고향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없겠는가 마는 내 고향 안동은 보다 각별하고 자랑스럽다.
'안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 충(忠)·효(孝)·인(人)일 게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고려초 국난극복 및 개국공신의 충의와 조선조 하루가 멀다한 외침과 내란 등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적 헌신과 의연한 대처, 그리고 오늘날 그 많은 인재들이 각계각층 요소요소에서 국가 및 사회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로 매진하는 안동인들. 이것이 바로 국가와 나라에 대한 충절이 아니겠는가.
안동을 자고로 예향(禮鄕)이라고 한다. 안동이 낳은 많은 성현들이 예(禮)를 숭상했다. 예의 목적은 인의, 즉 덕에 있는 바, 그분들은 자연을 사랑함에 앞서 사람을 사랑했으며 또한 사람에 대하여 올바름이 우선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우리 인간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순수한 행동으로 올바르게 되면, 바로 그것이 예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배웠다. 겸손하고, 양보하고, 성실하고, 정직한 것이 바로 예의 마음씨이고 또한 몸가짐이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보듬고 귀여워하는 것은 아래로 향하는 예(悌)이고,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저 조잘대며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재롱을 부려,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는 것 또한 위로 향하는 예(孝)라고 한다. 이러한 예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난세라 할지라도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필자 자신 또한 부끄러울 때가 한량없다. 오늘날 세상은 너무나도 거칠고, 무례하고, 혼란스럽다. 오륜지도(五倫之道)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예는 접어 두고라도, 인의와 권력을 훔치는 무리들이 득세하는 판국이 개탄스러우며,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의 본향 중국의 태안(泰安)지방도 우리 안동과 그 흐름이 같다. 이곳의 공자·맹자도 일찍이 이를 우려하여 권력의 언저리에 진을 치는 위정자가 많을수록 세상은 항상 어둡고, 백성은 목말라 신음하게 마련이며, 정쟁은 그치기 어렵다고 했다. 더욱이 권력을 쥔 사람은 백성을 볼모로 감언이설의 거짓말만 해댄다고 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예는 즐겁고, 자식이 부모에게 베푸는 예는 경건하며, 권력자가 국민에게 주는 예는 솔직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이럼으로써 바로 사회전반이 아름다워지고 신의의 예가 형성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우리 길상지(吉祥地) 안동인은 예를 다시 숭상할 줄 아는 예지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흔히들 말한다. "한반도 인재의 절반은 영남인이요, 영남 인재의 반은 안동인이다" 라고. 정말 때로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되어 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안동인은 정계·관계·학계·재계·종교계 등 각계각층에서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고려시대의 삼태사를 비롯,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농암 이현보, 송암 권호문, 역동 우탁, 서애 류성룡, 호양 권익창 선생 등, 학문과 덕행을 갖춘 명현석학, 백세사표(百世師表)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은가. 그리고 일제 항일투사 석주 이상룡, 일송 김동삼, 동산 류인식, 애국시인 이육사 선생 등, 안동을 일컬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겠다.
〈下편으로 이어짐〉
— 권기성 / 세명대 석좌교수, 전 공정거래위원회 국장
출처: 《영가회보》 8-3호 (2022년 여름호) 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