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네들의 한과 사랑이 배인 안동삼베

영가마당·안동 문화 · 송파농협 상임감사 강주모

2022年 07月 15日글 · 강주모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3호(2022년 7월 15일 발행) 11면 기고를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전 판에서 필자를 '류미향'으로 잘못 적었던 것을 지면대로 강주모로 바로잡았습니다.

송파농협 상임감사 강주모 송파농협 상임감사 강주모

내고향은 남후면 검암리다. 우리 동네는 그 유명한 안동포 주산지였다. 때가 되면 들판은 온통 어른 키를 훨씬 넘는 대마대가 녹색 호수처럼 출렁거린다. 음력 5월 단오 절기에 맞춰 대마 수확기가 도래한다.

안동포 길쌈하는 작업을 보면 대마 경작과 수확→삼찌기→쪄낸 삼 말리기→겉껍질 훑어내기→계추리 바래기(햇볕 활용 표백)→삼째기→삼 삼기→베 날기→베 매기→베 짜기→빨래→색 내기 작업 등이다. 이 모든 복잡하고 힘드는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데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수확철 일일이 낫으로 벤 대마는 키를 맞춰 추린 다음 잎을 제거하고 단단히 묶는다.

그때쯤이면 천방둑에는 흙가마가 만들어지는데 삼굿이라고 부른다. 대마는 삼굿에서 서너시간 이상 쪄낸다. 한여름 땡볕에서 이루어지는 이 작업은 매우 힘들어서 마을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쪄낸 대마는 고운 빛깔을 내기 위하여 강변이나 천방둑에서 말리고 나서 다시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다. 그 벗겨낸 껍질이 여인네들의 수많은 손길을 거치면서 삼베실로 거듭 태어나고, 그 실을 베틀에 걸어 짠 천이 안동포이다. 겉질을 벗겨내고 남는 속대궁을 우리 마을에서는 지릅이라고 불렀는데 초가지붕을 올릴때 이엉 밑에 깔거나 텃밭 울타리 용도로 사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삼베 짜는 작업은 고도의 끈기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숙련도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작업성과가 차이가 많아 숙련되고 체력이 좋은 여인네는 적지 않은 소득을 올렸다. 베틀에 앉아 수백 가닥 삼베 날줄 사이에 북을 집어넣어 한올한올 씨줄을 엮어서 짜낸다. 날렵한 솜씨라면 베를 짤 때 '딸각 시르릉, 딸각 시르릉' 박자도 잘 맞는다.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밤이면 베틀에 앉아 베를 짠다. 고되고 힘든 작업을 거쳐야만 되는 안동포는 우리 할머니·어머니들의 한이 서린 산물이었다. 그것은 또한 자식 사랑이 만들어낸 피와 땀의 결정체라고 생각된다. 어릴적에도 안동포는 자식들의 중·고등학교 학자금 마련에 적지 않은 현금 소득원이었다.

안동포 만드는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초여름 푹푹찌는 더위속에 키를 훨씬 넘는 대마밭에 들어가 일일이 낫으로 베는 작업과 삼굿에서 쪄내는 작업이 안동포 만드는 전과정에서 가장 힘이 든다고 한다. 삼베 한 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아낙네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지 요즘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리라.

예전에는 주요 명절이기도 했던 단오날에는 천방둑 느티나무에 동네 청년들이 힘을 합쳐 볏짚을 꼬아 만든 동아줄로 그네가 걸린다. 그날에는 어김없이 동네 처녀·총각들의 그네 타기 시합이 열렸고, 천방 둑은 온 동네 사람들의 흥겨운 놀이터가 되었다.

보리 수확철이 지나면 낙동강 건너편 음실 마을로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 뱃사공이 온 동네에 배 삯을 받으러 다닌다. 그 때는 집집마다 성의껏 보리쌀 몇 되씩을 준 것으로 기억된다. 나루터 옆에는 당시 알아주는 백사장이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전교생이 원족(소풍)을 자주 갈 정도로 풍경도 좋고 백사장 옆 느티나무 그늘도 낙동강 강바람이 불어주면 시원하기 그지없다.

베틀에서 베를 짜는 여인 지면에 함께 실린 옛 사진 — 베틀에서 베를 짜는 모습

— 강주모 / 송파농협 상임감사

출처: 《영가회보》 8-3호 (2022년 여름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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