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기는 힘들어도 재미나는 노래–귀거래사(歸去來辭)

영가칼럼 ·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22年 04月 15日글 · 이동필

편집실 안내 — 《영가회보》 8-2호(2022년 4월 15일 발행) 9면 〈영가칼럼〉을 지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글은 앞서 필자가 '이종묵', 코너가 '영가갈채'로 잘못 실려 있던 것을 원문대로 바로잡았습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지난 2016년 9월5일 의성 단촌으로 왔으니 햇수로는 6년이 된다. 1970년대 말 집을 나서 객지생활을 시작한지 40년만의 귀향인 셈이다. '일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 가겠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을 해 왔기 때문에 집사람도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퇴임식 당일 바로 떠나자는 제안에 '이 저녁에 꼭 가야겠느냐?'고 만류해 서울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고향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새롭다. 아내는 서울에서 자라 시골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더구나 단촌에 남편 말고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니 내심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그만 둘 때 VIP께 그동안 해 온 일과 앞으로 할 일을 정리해서 보고 드렸다. 그 자리에서 장차 어떻게 할 거냐 물으셔서 고향에 가 '이동필의 1234'를 새로 쓰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새로 정한 '1234'란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2) 두어 차례 밭에 나가 일하고 (3) 삼시세끼 노모와 함께 밥 먹고 (4)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나 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1234'는 현직에 있으면서 한 달에 두 번 이상 현장을 찾아 소통하겠다던 캐치프레이즈였다. 퇴직 후 이 자리 저 자리 기웃거리는 것보다 없는 재주로 혹사하며 두서없이 살아 온 한 몸도 좀 쉬게 하고, 혼자 계시는 노모와 같이 살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싶었다.

'그리워 그리워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어디러뇨 (중략)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먼 하늘만 바라보노라'라 하던 정지용 시인처럼 고향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가 옛집을 지키고 계셔서 당장 거처하는데 큰 불편은 없었으나 말로만 하던 농사는 여의치 않았고 오랜만의 농촌생활도 생소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친지들은 돌아가시거나 객지로 떠나고, 이웃과 한 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 더 할 말이 없는 막연한 고립감 속에서 해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쓰러져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농업과 농촌을 공부한다고 보낸 세월과 못다한 책임을 돌아보게 되었다.

전국의 228개 시군구 중 47%가 소멸위험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대부분이 농촌지역 시군으로 안동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지 오래인데다 학교나 일자리가 있는 서울로 젊은이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역여건이나 주민수요를 배제한 체 HW(하드웨어) 중심의 획일적인 부처별 지원방식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결국 지역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보자는 주민들의 자각과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을 강화해야 되는데 오랜 습관과 관행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체면불구하고 공직에 다시 나서보기도 하고 농촌의 장래를 생각하는 작은 공부방이라도 운영해 볼 생각을 했지만 여의치 않다. 정작 지역의 주인인 공무원이나 주민들의 반응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미덥지 않은지, 그래봤자 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 다 귀찮다는 뜻인지 솔직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재미를 붙인 게 안동나들이다. 퇴임 직후 적폐청산이라며 나라가 뒤숭숭할 때는 하회마을 앞 부용대며 옥연정사를 걸으며 삶의 이치를 생각하고, 도산서당 툇마루에서는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대개 농자재며, 제수용품을 구입하는 볼일을 보러 가지만 간혹 안동 어른들과 사찰이나 고택을 둘러보고 공연이나 전시회를 구경하기도 한다. 지난해는 단골병원을 서울에서 안동으로 바꾸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이다.

사실 안동에는 오래된 사찰과 고택, 수려한 자연경관 등 자랑거리가 많다. 그 가운데 으뜸은 '안동답답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도리와 체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관계인구를 늘리자는 말이 주목받고 있다. 비록 객지에 흩어져 살더라도 인연을 맺고 지내는 관계인구가 많다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비록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기조연구림(羈鳥戀舊林) 지어사고연(池魚思故淵)'이란 도연명의 싯귀처럼 '조롱속의 새와 연못의 물고기가 옛날 놀던 숲이며 강을 그리워하듯'이 사람들이 고향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그 지방이 소멸하겠는가.

— 이동필 /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출처: 《영가회보》 8-2호 (2022년 봄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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