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의 창립 기록(27쪽, 30~33쪽)과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기록(134쪽)에 실린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명단은 134쪽의 공로패 수여 명단 그대로입니다.

공로패를 받은 창립회원

2007년 9월,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자리에서 창립 발기회원들에게 공로패가 주어졌습니다.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해길 · 장원석 · 권원기 · 권태원 · 권화섭 · 김명년 · 류동주 · 석기홍 · 손병도 · 이용태 · 조주목

같은 자리에서 역대 회장 세 분 — 김해길 초대회장, 류목기 회장, 금창태 회장 — 에게는 기념품으로 은수저가 전해졌고, 참석한 모든 회원에게는 간고등어 한 손이 돌아갔습니다.

인사동 남강에서 이어진 준비 모임

회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1976년 가을부터 준비 모임이 이어졌습니다.

장원석 회원이 남긴 회고에 따르면, 처음 자리는 한정식집에서였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갔더니 따로 연락하지 않은 이상두(안동중학 졸업, 대학교수)가 이미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이상두가 적극 찬성했고, "동참과 협조만 해 준다면 내가 총대를 메겠다"는 말에 모두가 의기투합했습니다. 장원석 회원은 이날을 두고 "지금 생각하면 이날이 영가회의 잉태날이 된 듯하다"고 적었습니다.

2차 모임은 1976년 9월 14일 화요일, 류혁인(안동중학)·이상두(안동중학)·석기홍(안동사범)·손병도(안동농림)·김명년(안동농림)·김지학 등이 모였습니다. 인사동 한정식집 **〈남강〉**에서 오찬을 하며 모임의 구성을 논의했고, 회칙 초안은 이상두가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3차 모임도 같은 〈남강〉에서 열렸습니다. 이상두·이용태(삼보 회장)·석기홍·손병도·김명년·김해길·조주목·송보열·권화섭·권태원·권응열·권원기·천봉석·류동주 등이 모여, 이상두와 권화섭이 작성한 회칙 초안을 심의해 회칙(안)을 정했습니다.

창립총회

창립총회는 1977년 8월 26일 열렸습니다. 류혁인·이상두·권응열·송보열·김해길 등 61명이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김해길이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취임했습니다. 장소는 덕수빌딩 지하홀이었습니다.

부회장은 출신 학교별로 두었습니다. 안동농림학교에 김명년, 안동사범학교에 장원석, 안동중고등학교에 이상두가 맡았습니다.

초창기 사무실은 서울 중구 덕수빌딩에 두었는데, 장원석 회원 소유의 건물이었습니다.

설립 취지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영가회는 향토 안동을 사랑하고 향토문화를 기리면서 안동인으로서 긍지를 되살리는 우정의 모임입니다."

남은 물음

창립일에 대해 책 안에 두 가지 표기가 있습니다. 총편(6쪽)은 "1977년 8월 25일 창설", 역대회장 약사(27쪽)는 "1977년 8월 26일 창립총회"로 적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원자료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또한 창립총회 참석자 수도 27쪽은 61명, 장원석 회원의 회고(32쪽)는 "50여 명"으로 서로 다릅니다.

출처: 《영가회 40년사》 6쪽, 27쪽, 30~33쪽,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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