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안내 — 이 글은 《영가회 40년사》 제2편 〈역대회장의 약사〉 — 제3대 금창태 회장(책 102~129쪽, PDF 04) 의 한 자리(책 107쪽) 에 자리한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 약전 을 편집실이 흡으로 정리한 자리입니다. 모임 챕터의 〈2003.4.15 회원 4명 취임 축하연 — 김광림 · 김원중 · 이재범 · 권영건〉(
/archive/moim/3dae-2003-chukha-4myeong) 과 짝이 되는 자리.
안동농학교에서 시작된 결
"김광림은 안동농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교육대학을 거쳐 —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잠은을 일으키기 위한 생각으로 고시 준비를 했다."
24살에 행정고시 3등으로 합격했다. 그런데 농업고와 영남대학교 야간학부 출신이라 부족한 스페에도 수해문만 보였다는 — 경제기획원에 발령을 받았다.
퇴계로 발언하신 인심기천신(人士天) · 다른 사람이 멸 번 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는 좌우명
"퇴계로 발언하신 인심기천신, '다른 사람이 멸 번 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라는 좌우명이라 정승 속에서도 짜으꾸뜨하지 않고 — 대한민국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성장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고 자신한다."
기수 성적이 결혼식 당일까지도 부 12시까지 업무를 봤던 김 남과 영부이 있었기에 막상 야긴대학 출신으로 그가 — 재정경제부 차관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2003년 4월 한 축하연의 결
2003년 4월의 한 축하연 —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영가회의 한 축하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해 봄, 한국의 공직 · 학계 · 산업계의 한 자리를 함께 짊어진 회원 네 분께서 새로운 자리에 오르신 일을 맞아 마련된 자리(/archive/moim/3dae-2003-chukha-4myeong).
그 자리의 가운데, 당시 — 통계청장에서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영전하신 김광림 회원의 자리가 있었다.
함께한 네 분의 결
이 자리에서 함께 영전을 축하받으신 네 분:
- 김광림(金光琳) — 통계청장 → 재정경제부 차관 (이 글의 주인공)
- 김원 — 전 서울시립대학교 부총장 → 장관급 중앙도시계획위원장 (
/archive/geul/myungsa-kim-won) - 이희범(李熙範) — 한국행성신문 본부 이사장 → 서울 산업대학교 총장 (
/archive/geul/myungsa-lee-huibeom) - 권영건(權寧建) — 안동대학교 총장 (
/archive/geul/myungsa-kwon-ryeonggeon)
네 분 모두 영가회의 회원이며, 같은 해 봄에 한국 사회의 굵직한 자리에 함께 오르신 자리. 영가회의 사십 년 결에서도 흔치 않은 자리.
흡, 한 결
회원들 사이에서 김 차관은 — "차분하고 단단한 분" 이라는 평이 한결같다. 발언이 늘 자기 분야의 정확한 자리에서 시작해, 외부을 좀처럼 흩뜨리지 않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영가회의 자리에서 — 공직을 끌어들이지 않으셨고, 공직에 영가회의 이름을 쓰지 않으셨다. 이 결이 곧 영가회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자리에 닿아 있으면서도 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