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嘉會의 2008년도 상반기 해외문화유적탐방

회원 기고 — 해산(海山) 김만연 · 중국 산동성 일주 일기

2008年 05月 06日글 · 김만연

편집실 안내 — 《영가회 40년사》 339~344쪽에 실린 김만연 회원의 여행 일기입니다. 필자 소개는 "전 내무부 계장, 부산시 3개국장 海山 김만연"으로 적혀 있습니다. 날짜별로 지면을 옮겼습니다.

5월 1일 (목) — 출발

동행하기로 약속했던 영가회 감사인 후배로부터, 일신상의 사정으로 오늘 오후에 출발하는 금년도 상반기 해외문화유적탐방 중국 산동성 일주 여행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점심을 먹고 등산용 간소복 차림으로 최소한의 간단한 여행준비물을 작은 배낭에 넣어 지고, 2시경 집을 나서 인천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는 영가회 200여 회원 중 회장을 비롯해 상임부회장과 사무국장 등 집행부 3명이 참여하여 일행들은 매우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였다.

필자는 4인 1실 208호실에 투숙하게 되니 오후 5시 반이었다. 일행 중 최연장자인 78세 신성화학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해 연장자순으로 필자와 주식회사 국제건설 회장, 권택렬 주식회사 생태환경 회장 넷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5월 2일 — 청도

중국인들은 청도를 중국 속의 나폴리라 부르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청도는 산업화와 관광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현대화의 성공 사례인 것이다. 거북이 모양의 초대형 청도시청사 두 동의 옥상 간판이 이를 대변하고 있었다.

12시경 청도영빈관 앞에 버스를 세우고 1903년에 세워진 독일 총독의 관저를 관람했다. 독일 양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당시 245만 냥이 건설비로 쓰여 일개 조차지 총독으로서는 과한 관저를 지은 탓에 그 총독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고 했다. 이곳 영빈관은 6·25 피난 시절 경무대로 사용했던 부산 부민동의 경상남도지사 관사와 흡사한 점이 많았다. 독일인들이 이 영빈관을 사용한 것은 1914년 일본이 청도의 새 주인으로 들어오기까지 10년가량이다.

20시 30분에 중국에서의 첫 숙박지인 제남의 호텔에 도착했다. 필자는 허동진 회장과 1608호실 룸메이트가 되었다.

5월 3일 (토) — 곡부

곡부는 공자를 빼놓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도시이다. 공자의 사당, 공자와 그 후손이 살던 집, 공자 집안의 무덤 등 모든 볼거리들이 공자와 연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건한 성지의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실망 그 자체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중국의 체제는 필수적으로 보존해야 할 유적들조차 가벼운 볼거리로 전락시켜 버렸다. 공자를 매개로 한 무분별한 관광 상품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았다.

  • 공묘(孔廟) — 2500년 전 노나라 애공이 세운 공자를 기리는 사당. 각 왕조별로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은 총면적 9만 평방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사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 곳 앞에서 묵념하고 경내를 구경하는데, 천년 이상 묵은 수많은 향나무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 곡부시는 우리의 고향 안동시와 자매결연되어 있다. 일행 중 이미 이곳을 다녀간 회우가 있어 해박한 지식으로 상세한 설명을 해 주어 공묘·공부·공림 세계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 공묘의 바깥 대문인 앙성문(仰聖門) 은 성인인 공자를 우러러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 위의 萬仞宮墻 이라는 편액은 건륭제의 친필 글씨라고 하였다.
  • 성시문, 대중문, 홍도문, 동문문, 지문각, 13비정, 행단 등을 둘러보았다.
  • 자사(子思)가 거처하던 움막을 기념해 지은 집도 있었다. 자사는 《중용》을 지은 유학자이다.

5월 4일 (일) — 태산

아침 7시에 일어나 룸메이트와 함께 호텔 주위를 산책하고 맨손체조를 한 뒤, 8시 반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조찬을 했다.

20분쯤 달려 태산영지호텔 마당에 버스를 세우고 태산에 오르는 전용 미니버스로 바꾸어 탔다. 10시경 태산 입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70세 이상은 무료, 60세 이상은 반값이라 하여 여권을 모아 보여주고 혜택을 받았다.

10시 반경 케이블 승강장에 도착해 케이블카 승강권(편도 80元, 왕복 140元)을 사려 하니 바람이 심하여 운행 중지 중이라고 게시되어 있었다. 옆에는 "세계문화자연유산 中華十大名山之首" 라는 대형 간판이 우리를 기어이 정상에 오르게 하도록 충동질하는 것만 같았다.

케이블카 하나에 여섯 명씩 타고 오르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맑은 계곡물과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승강기에서 내리니 중국 역대 황제들이 봉선(封禪)을 거행하던 곳, 웅장한 건물군이 있었다.

봉선이란 중국 신화 속에서 나오는 제사의 하나로 하늘에 자신의 치적을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상 최초로 봉선의식을 한 군주는 진시황이다.

태산은 중국인들이 5대 명산으로 꼽는 五岳 중 하나로, 동쪽에 있어 동악이라고도 불린다. 오악 중에서도 태산은 五岳之長, 五岳獨尊 이라 하여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꼽았다. 이런 위치 때문인지 역대 황제들은 봉선의식을 치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태산이라고 생각했다.

당대에 내로라하는 시인 문필가들 또한 태산에 올라 시를 읊고 바위에 새기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태산에 한번 오르면 적어도 10년을 더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따라서 중국인이라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생애 한번은 반드시 태산에 오르고 싶어 한다.

정상에서 다시 남천문까지 걸어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승강장에 내려, 미니버스를 타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태산영지호텔에 도착하니 2시였다.

저녁에는 한국전통요리 "수라" 식당을 찾아가니 8시 20분이었다. 주인 박정환 씨가 정중하게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5월 5일 (월) — 노산

아침 8시에 호텔 레스토랑에서 뷔페식 조찬을 하는데, 따뜻한 조당숙과 콩국물이 입에 가장 맞았다. 류석근 회장은 튜브식 고추장을 많이 가져와 거의 매 끼마다 식탁에 올려 구미를 돋우었다.

9시 30분경 호텔을 출발해 노산(崂山) 풍경구로 향했다. 10시 40분에 매표소를 지나 11시에 구수십팔담(九水十八潭) 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관광버스는 가파른 고갯길을 잘 오르지 못해 약간 후진을 하여 일행을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나흘간을 안전벨트도 없는 낡은 관광버스를 타고 산동성을 종횡무진 달려 무사히 여행을 마쳤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여행 기간 중 매일같이 김계동 국장이 간식과 음료수를 공급해 가며 일행을 즐겁게 해 주어 대단히 고마웠다.

12시 40분에 휴식 겸 가이드가 안내하는 우의원차장(友誼苑茶庄)에 들러 고감로차 · 보이차 · 홍차의 효능과 다구 사용법 설명을 듣고, 몇몇 회우는 중국차를 여행 선물로 구입하기도 했다. 13시에 청도시 남구의 한국관에 도착하여 오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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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가회 40년사》 339~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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